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책이 나온 소감은 어떤가요?

실감이 잘 안 나요. 다른 작가들과의 단편집이 나왔을 때는 친구들이 사인해달라고 그러면 내 책은 아니니까 내 책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는데, 이제 정말로 책이 나왔잖아요. 그럼 사인해서 줘야 하나.


섬이나 사투리 등의 요소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제가 시골에서 자라서 그래요.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걸 쓰고 싶고요. 고향 친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똑같이 시골에서 자라도 인식을 안 하는 것들이 있거든요. 「묘생만경」에 나오듯 동물 기르는 데 계속 실패해야 아는 것도 있고요. 시골이라는 공간 자체가 도시보다는 한 꺼풀 벗겨진, 소설 쓰기에 좋은 배경이에요. 더 적나라한 삶의 이야기가 드러나니까요.


소설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특이한 매력이 있어요. 중편이나 장편도 가능할 소재를 단편으로 써내는 능력이 있고요. 서사를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의도적으로 빈 공간을 남겨두잖아요.

제가 영화 시나리오를 써서 그런가 봐요. 소설은 「그의 지구 정복……」이 처음이었어요. 소설을 쓰겠단 생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쓰고 싶은 게 무슨 문학 작품은 아닌 거예요. 전업 작가가 된다는 것도 두려웠고요. 시나리오는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는 장이 형성된 것 같아요. 다행히 제가 쓰려는 이야기가 시나리오에서 통할 수 있는 소재기도 하고요. 

한참 시나리오 쓰면서 이리저리 치이고 하다가, 배명훈 님 소설을 보고 “내가 쓰려고 했던 게 딱 이건데!” 하고 쓰기 시작했어요. 예전에 팬덤에서 국내에서는 SF를 쓸 수 없다는 논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배명훈 님은 그런 거 아랑곳 않고 너무 자유롭게 재미있게 쓰시더라고요.


시나리오와 소설을 같이 쓰면서 힘든 점은 없었어요?

처음에는, 어차피 글 쓰고 있었으니까 소설도 잘 쓸 거라고 생각했던 게 있어요. 시간이 지나니 오히려 시나리오를 썼던 것 때문에 발목을 잡혔구나 싶어요. 시나리오는 문장을 다루는 글이 아니거든요. 한글보다 영어 문장처럼 쓴 걸 더 좋아할 때도 있고. 공동작업이고 많이 두들겨 맞게 되고요. 소설은 제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끝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나쁜 점도, 좋은 점도 있고.

그리고 제가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여주겠다는 욕심이 있어요. 상업적인 시나리오 쓰기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요. 「뱀과 소녀」는 그걸 의식하면서 피해서 썼던 글이에요. 그래서 좋아해요.


초능력과 외계인을 좋아한다는 언급이 나오잖아요.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나요?

다들 좋아하는 거 아닌가요. (웃음) 너무 오래전이라 어떻게 좋아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누구나 어릴 때 판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를테면 관상, 점, 사주, 이런 게 우리나라의 판타지잖아요. 저도 초능력이나 외계인을 제 판타지로 좋아했던 것 같아요.

원래 장르 소설을 쓸 생각은 없었어요. ‘순문학’을 쓰고 싶지 않았던 이유와 똑같이, 정해진 틀에 들어간다는 게 제가 소설을 쓰는 목적과도 반하는 거였고요. 그냥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소설을 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쓰다보니 그냥 이러고 있더라고요. 아마 저처럼 생각하는 작가들이 웹진 거울에도 많을 거예요. 자기 색깔을 갖고 쓰는 분들이 많은데, 이런 걸 장르로 재단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

다음에 쓸 거요.


어디서 많이 듣던 대답인데요. (웃음) 그럼 다음 글은 어떤 건가요.

우화인데 다 읽고 나면 “아, 이걸 이야기하려는 거였구나” 싶은 것. 가제는 「기차역에서」인데, 제목 짓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그리고 내년 초쯤 3D 애니메이션이 개봉해요. 가제는 <히어로즈>고, 서유기 속 캐릭터들이 미래에 나타나는 이야기예요. 사실 전 그다음 작품을 더 기대하고 있는데요. 사막여우가 주인공인 <더 슬로우>예요. 사막여우는 빠릿빠릿하고 잘 돌아다니잖아요. 그런데 걔가 거북이, 달팽이, 나무늘보를 데리고 아마존에서 미국으로, 그것도 매우 빨리 가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많이 기대해주세요.





라키난 

책과 밥을 주면 글을 씁니다. 고료도 좋아합니다.

거울에서 기사필진으로 주로 인터뷰 담당, SF도서관에서 행사와 판매 담당.

현재는 평화로운 일개 취업자를 간절히 지망.

장래희망은 안락의자 탐정 타입의 할머니.

전자책은 기본적인 기술개념부터 다르다


2010년 8월. 내가 출판계에 들어와서 첫 번째로 한 일은 당시 가지고 있던 10여 종의 전자책 전용 단말기에 ePub 전자책 파일을 넣고 사내에서 시연하는 거였다.

“자, 이렇게 같은 파일이지만, 각 단말기마다 다르게 나옵니다. 이것은 바로 ePub의 리플로우 특성 때문입니다.”

전자책을 만들어야 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ePub이라는 말과 함께 리플로우라는 개념에 대해서 알아야만 한다. 가장 간단한 전자책 관련 기술 용어이며, 이를 통해서 실제적으로 전자책의 편집과 제작 등에 관한 의견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길벗출판사에서 전자책에 대한 이해 정도는 이 정도 수준이었다. 전자책 자체에 대한 개념도 없는, 일반 독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다. 초기 1개월은 상사에게 설명하면서 보냈고, 이후로 업무를 진행하면서 편집팀과 디자인팀, 영업팀, 마케팅팀 순으로 같은 과정을 반복하면서 진행해야 했다. 여전히 전자책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원이 많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가 회사에 들어왔을 때보다는 전자책에 대한 기본적인 기술 개념이 널리 퍼져 있는 상황이다.

출판사에서 전자책을 제작할 때 첫 번째, 가장 큰 걸림돌은 전자책의 기본적인 기술 개념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종이책만 다루던 이들에게는 단말기, 스마트폰, 태블릿의 화면 크기에 따라서 판면이 일정하지 않은 상태라는 리플로우 개념 자체가 매우 낯설다. 초기에 상당수 출판사가 외부의 전자책 제작업체에게 작업을 맡기면서 이러한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ePub 전자책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전자책 제작업체가 만들어 온 전자책 판면이 화면 크기에 따라서 수시로 바뀌는 게 못마땅하고, 심지어 사기당한 기분까지도 든다. 전자책 제작 업체로서는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여겼던 부분을 일일이 설명하자니 진이 다 빠질 노릇이다. 이런 대립 관계가 심해지다가 결국 전자책은 기술적으로 어렵거나, 자신들의 책에는 적용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포기해버린다. ePub 전자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었다면 애시당초 일어나지 않았을 갈등으로 전자책 제작이 좌초되는 것이다.

이런 개념을 받아들였다고 해도 또 하나의 산이 남아 있다. ePub 전자책은 웹페이지를 만드는 HTML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즉 전자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종이책 데이터를 HTML로 변형해야 한다. 다행히 널리 쓰이는 조판 편집 디자인 프로그램인 인디자인에서는 HTML로 변형해서 출력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게 일부 특수 문자나 외국어 문자의 소실이다. 이는 폰트의 호환성 문제인데, 상당수 폰트가 표준 유니코드를 잘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HTML 데이터 상에서 글자가 빠지거나 다른 글자가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구형 쿽 3.3~4.0이하 버전에서는 한글마저도 유니코드에 맞지 않아, HTML 데이터를 추출하려고 최신 맥이나 PC의 인디자인에서 불러오면 글자 자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러한 부분은 전자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편집부와 함께 다시 교정교열 및 오탈자 검수 과정을 거치면서 수정해주어야 한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쿽 3.3으로 제작한 도서 데이터를 인디자인에서 불러온 모습1 - 미드 핵심패턴 233(길벗 이지톡)]


[쿽 3.3으로 제작한 도서 데이터를 인디자인에서 불러온 모습2(일부 확대: 괴상한 한자가 들어간 모습) 

- 미드 핵심패턴 233(길벗 이지톡)]


길벗출판사에서 처음 100권 이상의 구간을 전자책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할 때 많이 경험한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본래 종이책을 담당했던 편집자가 전자책의 교정교열과 오탈자 확인을 하고서 넘긴 자료로 전자책 담당자가 일일이 수정하는 방식으로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길벗출판사에서는 이러한 프로세스가 완전히 정착했다. 편집자는 종이책뿐만 아니라 전자책의 검수도 함께 진행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발견된 사항들이나 전자책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아이디어를 내서 넘겨주면 최종적으로는 내가 수정 및 보완하는 방식이다.

이런 비표준적인 폰트 사용 부분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벗어나기는 힘들다. 현재까지 출판사의 주요 매출은 종이책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인쇄 결과물에서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인식을 전환하기가 어려운 점도 있다. 출판계 전체가 비표준적인 폰트 사용에 대한 문제점을 깨닫지 않는 이상, 편집자와 전자책 담당자는 계속해서 불필요한 일에 시간과 수고를 쏟아야 할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기술적 문제를 두 개만 지적해보았다. 이렇듯 전자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출판계에서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기술적인 장벽들이 산 넘어 산처럼 펼쳐져 있다. 문제는 이런 사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문제를 인식하면 그에 따른 대비를 하거나, 적합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게 당연하다. 길벗출판사의 경우는 나와 같은 전자책 담당자를 선발하고, 기획, 외주 제작업체 관리 감독, 직접 제작 등의 업무를 맡기고 있다. 전자책이 쉽게 나올 만한 게 아니라는 걸 회사가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이 없는 출판사들은 대부분 전자책 외주 제작 업체에 전 작업을 맡기는 걸 선호하는데, 앞에 제시한 것과 같은 기본적인 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상당히 낮은 가격을 제시하곤 한다. 전자책 제작업체들 상당수는 영세하고, 아직 어떠한 보호 장치도 없기 때문에 이런 낮은 가격 제시를 감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들은 최저 제작비는 현재 권당 10만원이었다. 당연히 이 가격으로는 제대로 된 품질의 전자책이 나올 수 없다. 앞서 설명한 기본적인 기술적 문제에 대응하는 것만 하더라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 밖에도 정말 제대로 된 전자책이라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HTML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가진 인력이 제작과 관리를 해야 한다. 전자책은 그냥 변환되는 파일이 아니라, 새롭게 디자인을 하고, 편집 조판을 앉혀야 하는 새로운 책 제작 프로세스를 거쳐야만 한다. 이러한 이해가 없는 출판사들은 결국 “전자책은 역시 품질이 조악하다”거나 “전자책은 역시 제작하기 어렵다”는 말만 하기에 급급하다.

최근에는 sbi에서 진행하는 전자책 제작 강의를 통해서 이런 부분이 상당히 해소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전자책에 대한 기술적인 이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는 출판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 부분이 출판사에서 전자책을 만들지 못하거나 만들지 않는 첫 번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광희

『Epub 전자책 제작 테크닉』 저자. 도서출판길벗의 전자책 기획및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전자책으로 언젠가 단편 영화, 인디 밴드 음반, 소규모 교육용 게임을 서비스할 거라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다.

on 우주 짝수호마다 "이광희의 전자책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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