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살다보니 자기 소개할 일이 간혹 생긴다. 

당연하지만 처음에는 이름부터 교환한다. 그리고 질문이 이어진다. “하시는 일이?” “작가요.” “소설? 그림?” “소설가.” “주로 뭘?” “과학소설.” 이쯤에서는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들린다. “출간된 책 같은 거 있나요? 작품 이름이? 혹시 뭐 어디서 상이라도?” 보통은 이렇게 진행한다. 나이나 사는 곳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도 있고 나오지 않을 때도 있고. 

사람이 자신을 소개할 때에는 가장 중요한 정보에서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것 순으로 알려준다. 상대방이 시간을 들여 들어주는 상황이라면 시간 순으로 하기도 한다. “에, 그러니까 처음에 왜 작가가 되고 싶었냐면요.”


작가 이력은 모르는 사람 앞에서 하는 첫 자기소개다. 본인이 직접 하지 않는다면 번역가나 그를 추천하는 사람이 대중 앞에서 소개하는 작은 자리다. 


로저 젤라즈니의 이력은 대개 이렇게 시작한다.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SF를 쓰죠.” 혹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렸을 때부터 신화와 전설을 엄청 봤다더라고요.” 어슐러 르귄은 이렇게 시작한다. “SF에서 노벨상이 나온다면 첫째 후보라고 불리는 분이죠.” 혹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버지가 인류학자고 어머니가 동화작가예요.” 필립 K. 딕은 이렇게 시작한다. “태어나자마자 쌍둥이 누이가 죽었다더라고요.” 그리고 줄줄이 이어진다. “그때부터 영 사람이 안 좋더니 나이 들어서도 강박증에 마약에, 이혼도 다섯 번이나 했다니까요. 평생 소설은 썼는데 잘 안 됐죠. 죽기 직전에야 좀 살 만해졌다니까.” 

그들의 첫 인사는 그 사람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거나, 작가가 된 계기거나, 그 작가가 추구한 화두의 근원이며 시작이 되는 정보다. 나는 이런 소개를 들으며 대충 그 책의 분위기를 예상한다. 책을 보고 나서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구, 어쩐지.”


나는 전에 프로필을 쓰려고 책의 날개를 하나하나 훑어보다가 몹시 이상한 기분에 빠진 적이 있다. 외국인 저자의 첫인사는 이토록 제각각이건만, 한국인 저자의 첫인사는 한결같았기 때문이었다.

“이 책 쓰신 분이군요. 뭐 하시는 분인가요?”

“예, 저는 XX대학 XX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뭐잉?”

몇 권 살펴보다가 기묘한 기분이 들어 그날 집에 있는 책날개를 전부 뒤져보았다. 그날 나는 일치단결한 목소리로 ‘예, 저는 XX대학 XX학과를 졸업했습니다.’ 하고 외치는 저자의 물결에 꽤나 지치고 말았다.


학교 이름 쓰지 않을 이유야 사실 없다. 자기 이력인데. 내가 뭘 좋아하고 우리 집 강아지가 얼마나 귀여운지 같은 것도 쓸 수 있는데 학교 이름 못 쓸 게 뭐가 있나. 나도 쓰기도 했고 별로 이상할 건 없는 일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그 많은 저자가 ‘하나같이’ 학교로 첫인사를 하는 건 참 이상한 풍경이 아닌가. 

최소한 당신 뭐 하는 사람인지 먼저 알려달라고. 

한국인 특성상 학교 졸업하기 전에는 다른 일 하기 힘들어서 시간 순으로 쓰는 거라고 생각해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초등학교는 또 안 쓰잖아.





김보영

소설가.

단편집 『멀리 가는 이야기』 『진화신화』와 장편소설 『7인의 집행관』을 출간했다.

현재 강원도에서 가족과 함께 피망과 아삭이고추를 기르고 있다.







































행복한 결말은

이야기니까 나오는 거죠



자신의 책이 나오는 소감은?

부끄러워요. (웃음) 보여주고 싶지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런 게 있어요. 주위 사람에게 책을 선물로 주고는 싶지만 안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느낌. 누가 봐주면 좋겠는데 부끄러우니까 자세히는 안 봤으면 좋겠다 싶은.


수록작은 어떻게 골랐나요?

저는 스스로 동양풍의 글을 많이 썼다고 생각했는데요. 다시 보니까 제 글이 무게나 분위기가 굉장히 다양하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취미로 글을 쓰는데, 그래도 소설로 쓰는 것과 더 가볍게 쓰는 게 있어요. 같은 레이블이 아니라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다보니 한 권으로 엮기가 많이 힘들었어요.


‘소설’과 아닌 것의 차이는 뭐예요?

가벼운 건 소녀소설이라는 느낌? 『홀연』에서는 「심각하게 찬란한」이 그렇죠. 「동백」은 애초에 이런 만화가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쓰기 시작했던 거고요. 예전에는 캐릭터 다루는 게 서투르다고 생각해서 일을 통해 훈련하려는 게 있었거든요. 게임 시나리오 쓰니까요. 그런데 일을 오래 해서 그런지 이제는 버릇처럼 패턴을 활용하게 되더라고요.


고풍스러운 말이 많이 나오잖아요. 어디서 기인하는 건가요.

그런 책을 많이 샀었죠. 한국복식문화에 관한 책들 좋아하고요. 한시어 사전이라고 시에는 나오는데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 실린 책이 있어요. 요즘은 좋은 책이 워낙 많아서.


로맨스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이 많은데, 정말로 로맨스에 집중했다는 느낌이 드는 건 「동백」밖에 없어요. 다들 연애를 못 해요.

연애를 끼얹었죠. “옜다, 별사탕이다” 하는 느낌으로. 연애를 다루려면 아예 코드만 활용하거나 깊이 이해를 하고 써야 하는데요. 후자는 필연적으로 사람의 바닥을 봐야 하는데, 그게 너무 구질구질해서 제가 힘들어요. 지금까지 쓴 작품들은 비극이 아니면 대부분 연애 감정을 인지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이루어지진 않더라고요. 이루어지고 나면 바닥이 있으니까요.


「천 번의 밤 천 번의 낮」 등은 등장인물 자체가 인간이 아니라 추상적인 존재라는 이미지라 같은 비극이라도 신화나 동화에 나오는 비극으로 보이는데, 「화선」은 굉장히 인간적인 갈등이 나오잖아요. 그런 점에서 가장 무겁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회의주의적이고요. 이상理想은 언젠가는 꼭 망가질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이 보여요.

행복한 결말은 이야기니까, 소설이니까 나오는 거죠. 그다음의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요. 차근차근 쌓아도 끝이 없고, 분명히 누구도 잘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치유나 회복의 이미지가 저한테 부족한 것 같기는 해요. 전 그게 어떻게 나아질 수가 있지? 싶어요.


인간이 아닌 존재가 자주 나오잖아요. 그것도 관련이 있을까요?

인간이 아닌 것들은 영원하고, 약속을 지키고, 신뢰를 유지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약속을 어기는 건 인간이라는 뉘앙스의 말을 많이 썼더라고요. 웃긴 건 그런데도 그들은 인간을 사랑한다는 거죠.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어떤 작가로 남고 싶은지.

쓰고 싶은 글은 항상 있어요. 군상극을 쓰고 싶어요. 여러 사람으로 세계가 꽉 짜인 이야기를 좋아하거든요. 작가로는 그냥 흔히 말하는, 취미로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글을 쓰니까, 혼자 쓸 때는 제 취향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라키난

책과 밥을 주면 글을 씁니다. 고료도 좋아합니다.

거울에서 기사필진으로 주로 인터뷰 담당, SF도서관에서 행사와 판매 담당.

현재는 평화로운 일개 취업자를 간절히 지망. 장래희망은 안락의자 탐정 타입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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