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가가 된 뒤에 몹시 심려하신 아버지는 자주 신문 기사를 오려서 내가 볼 수 있는 곳에 놓아두셨다. 그 대부분은 억대 수입을 얻는 작가들에 대한 기사였다. 아버지는 회당 천만 원의 수입을 얻는 방송작가의 기사를 주시며 “방송작가 해볼 생각 없니.”라고 하셨다. 1억 원의 고료를 받은 시나리오작가의 기사를 주시며 “영화 쪽으로 가는 게 장기적으로 맞지 않니.” 하고 토닥이곤 하셨다. 전에 뵌 어떤 분은 몹시 의문스러운 얼굴로 “왜 웹툰 안 하세요.”라고 질문했다. “요새 웹툰 작가 억대 연봉 받는대요.” 동인지에 대해서도 들었다. “동인지 잘 하면 억대 수입 번대요.”

저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농사를 짓다가도 듣는다. “아이고, 이거 해서 얼마 벌어요. OOO를 재배하면 억대 수입 들어온다는데.”

처음에 나는 내가 뭔가 문제가 있거나, 엄청나게 잘못하고 있거나, 수억의 돈을 쉽사리 손에 굴릴 수 있는데 바보스럽고 미련하게 그 행운을 손끝에서 놓치고 있거나, 아니면 재능도 능력도 없이 되도 않는 길에 뛰어들었나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뭔가 돈과 명예에 초탈한 도인의 인생을 살고 있거나, 


지금은 그 어느 쪽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내게 문제도 잘못도 없다는 것도 안다. 나는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혹사당하는 방송작가와 시나리오작가의 이야기를 알고, 인세를 떼먹히는 작가와 밤새 일하고도 겨우 적자나 면하는 웹툰 작가의 이야기도 안다. 밤새도록 야근해도 간신히 월세나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회사원의 이야기도 안다. 그런 사람들이 다들 부끄러움에 입을 다물고 자기 자신이 못나고 어리석어서 이렇다고 생각하며 억대 수입을 얻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속삭이는 줄도 안다. 

그런 이야기에는 아무런 의미도 정보도 없다. 어느 분야든 그 분야에서 나라 최고인 사람이 억대 수입도 벌지 못하면 말이 안 되는 일일 텐데, 그 평범한 일이 왜 이토록 기삿거리가 되는지 모를 일이다. 삼성이나 현대 사장이 억대 연봉을 받는다는 이야기나 다름이 없다. 그럼 회사원이 되면 누구나 억대 연봉자가 되나.


언제부터 우리네 삶이 ‘무엇을 하지 않음으로 해서 일확천금을 얻을 기회를 놓치고 있는 미련한’ 것이 되어버렸을까. 그런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에 어떤 자양을 주는지 모르겠다. 그 생각은 삶을 참으로 우울하고 비참하고, 비천한 것으로 만드는데.

사람이 일이 있고 친구가 있으면 그 삶에 자긍심을 가져도 좋은데, 왜 그러도록 허락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맹자 말씀에 “풍년에는 자제들이 서로 돕고, 흉년에는 자제들이 서로 괴팍스럽게 된다. 하늘이 그들의 소질을 그렇게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그렇게 쏟도록 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늘이 이 나라 사람들의 소질을 ‘한 방울…… 으아아아 너무 많이 넣었다’ 하고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마음을 일확천금에 쏟도록 하는 무엇인가가 나라에 흘러 다닌다. 국민 대다수가 ‘일확천금이라도 얻지 않으면’ 생존을 점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무엇인가가. 억대 연봉의 소문은 기실 부자의 소문이 아니라 생존의 소문이다.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다. ‘어딘가에는 생존하는 사람도 있다더군요, 그러니 어쩌면 우리도 생존할 수 있겠지요.’

‘안녕하십니까.’의 소문은 그 반대에서 출발한다. 사실 뒤늦게 고백하는데 저는 안녕하지 않았어요, 지금까진 내가 뭔가 학교 다닐 때 공부 안 하고 뭔가 남보다 게으르고 일도 못해서 안녕하지 않았나보다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우리는 그냥 다 안녕하지 않았어요,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안녕하지 않았어요. 저기 어디 외로운 산에 보물을 끼고 사는 억대 연봉자라는 소수 종족이 있기는 하는 모양인데, 그게 우리네 삶과 무슨 연관이 있나요, 그 사람들은 그냥 예전부터 있기 마련인 사람들이건만.




김보영

소설가. 단편집 『멀리 가는 이야기』 『진화신화』와 장편소설 『7인의 집행관』을 출간했다.

현재 강원도에서 가족과 함께 피망과 아삭이고추를 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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