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야! 안 들리냐? 귀에 X 박았어?”

김유나는 아침부터 자기에게 쌍욕을 하는 불량한 후배는 참을 수 있어도, 자기와 구인희가 무슨 사이냐고 따지는 것에는 불쑥 화가 치밀었다. 참아야지, 유나는 생각했다. 아침부터 학교 복도에서 이러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이 학교가 전국구 막장 고등학교인 성북공고라고 해도 유나는 경찰서장의 외동딸이자 학생회장답게 점잖게 행동하려 했으나 여학생이 거칠게 어깨를 잡아채자 이제는 참기 힘들었다. 손을 뿌리치고 가짜 속눈썹을 붙인 여학생의 눈을 똑바로 쏘아보며 유나가 말했다.

“나, 구인희 그 쓰레기 새끼랑 아무 관계 아니거든?”

“XX년이!”

뺨을 때리려 치켜든 손목을 붙잡히자 여학생이 쌍욕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인희 오빠!”

여학생이 말했다. 인희는 여학생의 뺨을 후려갈겼다. 

“몇 번 놀아줬더니 마누라인 줄 아나. 안 꺼져?!” 

바닥에 쓰러져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던 여학생이 인희의 발길질에 배를 얻어맞고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유나야, 괜찮아?” 

여학생을 무시하며 고개를 돌린 인희가 주먹으로 얼굴을 얻어맞았다. 두 방, 세 방, 뒤이어 배에 유나의 발차기가 깊숙이 들어갔다. 

“저질 새끼!” 

얼얼하게 아픈 주먹을 흔들며 유나가 쓰러진 여학생에게 다가가 부축해 일으켰다. 검은 마스카라 눈물이 여학생의 눈에서 흘러내리다 허연 뺨 위에서 파운데이션과 뒤섞였다. 인간말종인 인희와 그런 인희에게 반한 여학생에게 유나는 진심으로 화가 났고 안타까웠다. 유나는 여학생을 양호실로 데려가느라 10분 늦게 교실로 들어갔다. 유나는 능글맞게 자기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리는 인희를 보자 바퀴벌레가 피부 위를 기어가는 것 같이 기분 나빴다. 구인희는 유나가 생각하는 이 학교 최고의 암이었다. 큰 키에 체격이 좋아 힘으로는 교내에 선생님을 포함해서 당할 자가 없을 정도였고 성격마저 잔인하고 잔머리도 좋았다. 학교 뿐 아니라 지역에서도 유명해 조폭들과도 형님아우 지낸다는 소문이다. 

그런 인희를 믿고 반의 불량학생들이—전교생 대부분이 불량학생이지만—대놓고 큰 소리로 떠드는 데도 담임인 최건형은 안 보이는 척 조회를 계속했다. 체격도 좋아 불량학생들과 싸운다면 지지 않을 텐데도 최건형은 겁쟁이처럼 굴기만 했다. 저런 어른 만큼은 되고 싶지 않아, 유나는 생각했다. 왜 잘못된 것이 눈앞에 있는데 타협하는 거지? 뒤에 조폭이 버티고 있어서일까?

“잠깐만 조용히 있어.” 

담임이 말했다.

“오늘 전학생이 오기로 했는데, 교무실에서 데리고 올 테니까.” 

말을 마치자마자 담임이 밖으로 나갔다.

기대감으로 반이 시끌시끌해도 유나는 심드렁했다. 어차피 또 다른 양아치 하나가 늘 텐데, 심드렁한 유나의 감정은 문이 열리고 전학생 강우람이 들어오자마자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예쁘다, 유나가 우람을 보고 처음으로 떠올린 말이었다. 우람은 이름과 달리 싸움질이나 하는 양아치들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하얗고 깨끗한 얼굴, 단정한 머리, 깔끔하게 다린 교복은 전에 다니던 학교의 것으로 보였다. 크고 둥근 눈은 살짝 웃음기가 담겨 반쯤 감겨있고, 입매가 항상 웃고 있는 듯 살짝 위로 올라가 있었다. 여자아이 같기도, 남자아이 같기도 한 중성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우람이 교실문 안으로 들어와 교탁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자, 방금까지 설렘으로 가득했던 유나의 마음이 순식간에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찼다. 우람은 다리가 불편한 듯 가볍게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걸었다. 

“안녕.” 

교탁에 선 우람이 말했다. 

“난 강우람이라고 해. 앞으로 잘 부탁할게.” 

예상한 대로 대답대신 야유가 교실 안을 울리자 유나는 화가 났다. 비겁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최건형은 종소리를 핑계로 이미 밖으로 나가 버렸고, 인희도 무관심한 표정으로 담배를 찾으며 나갔다. 인희의 꼬봉들이 호랑이가 없는 산의 승냥이나 여우처럼 사납게 날뛰었다. 유나의 앞자리에 앉은 불량학생이 바닥에 천 원짜리 지폐를 던졌다. 

“야, 병신! 10초 내로 빵 사와! 잔돈 남겨오고!” 

교실 전체에 웃음이 터졌다. 우람은 개의치 않고 천천히 빈자리--공교롭게도 유나의 옆자리--로 걸어왔다. 미소 띈 얼굴로 온갖 모욕과 욕설을 개의치 않으며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우람의 모습이 유나는 거룩해 보이기까지 했다. 

바닥에 떨어진 천원 지폐 위를 지팡이로 짚으며 우람이 자신을 지나치려 하자 앞자리의 불량학생이 발로 지팡이를 후렸다. 

우람이 바닥에 쓰러지자 교실 안에 웃음이 터졌다. 유나가 화가 나서 남학생의 따귀를 때리고 우람을 일으키려 하자, 남학생이 “남자친구 믿고 까불기는…” 하고 말했다. 유나가 벌떡 일어나 집어든 천원 지폐를 구겨 남학생의 얼굴로 집어던졌다. 

“누가 누구 남자친군데?! 개념이 없는 것도 정도가 있지, 넌 사람도 아냐!” 

순간 이성을 잃은 남학생이 휘두른 주먹을 막은 유나가 남학생의 등 뒤로 비틀어 꺾어 올렸다가, 고통스러워하는 남학생이 몸부림을 치다 다른 쪽 팔로 머리를 쳐 책상 위로 쓰러졌다. 비명을 꾹 참은 유나 대신 다른 여학생들이 비명을 질렀다. 남학생이 쓰러진 자기를 내리친다는 생각에 유나는 오싹해졌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책상과 남학생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우람이 유나와 남학생 사이로 끼어들다가 지팡이를 헛짚어 넘어진 것이 때마침 몸통박치기가 되어 남학생에게 명중시킨 것이다. 바닥에 쓰러진 일어난 우람이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듯 웃음을 지으며 유나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니?” 

“으, 응….” 

유나가 대답하며 손을 내밀었다. 유나의 손을 붙잡고 지팡이를 짚으며 우람이 바닥에서 일어섰다. 우람의 손은 의외로 단단하고 남성적인 감촉이 들었다. 일어난 우람과 유나의 시선이 서로 만났고, 우람이 귀엽게 미소 지으며 고맙다고 하자 왜인지 얼굴이 뜨거워진 유나가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고 돌아온 구인희가 부재중에 일어난 상황을 알고, 우람을 공격하려는 남학생을 공개적으로 린치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구인희와 같이 교실로 돌아온 최건형은 관심 없다는 듯 정리하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수업시간 내내 유나는 우람이 신경 쓰였다. 우람은 그동안 아무도 듣지 않던 수업을 누구보다 열심히 필기하며 성실히 들었다. 옆자리에 앉은 우람을 곁눈질로 살펴보던 유나는 점심시간이 되자 우람에게 학교를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녹슨 계단 난간, 계단 위의 가래침, 복도의 담배냄새, 창틀의 꽁초, 무의미한 금연표어들, 여기저기 균열이 가고 피와 담뱃재 자국이 남은 벽을 지나 옥상으로 올라왔다. 심호흡을 하며 유나가 말했다. 

“이 학교에서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야. 담배냄새가 안 나거든. 담배꽁초는 있지만.” 

“좋은 곳이네.” 

우람이 말했다. 

“그런데, 학생회장이라고 했었지? 어떻게 학생회장이 된 거야? 유나 넌… 여기 애들이랑은 좀 다른데.”

“우리 학교는 학생회장은 선거로 뽑고, 부학생회장은 학생회장 추천으로 후보가 돼서 학생회장이 당선되면 자동으로 당선되는 식이야. 원래 학생회장이었던 언니가 일 하기 싫으니까 나를 맘대로 골랐던 거야. 그런데 그 언니가 임신해서 학교 자퇴했거든. 그래서 내가 학생회장이 되었어.”

“우와,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넌 왜 이런 학교로 전학 온 거야? 알고 온 건 아니지?”

“알고 오긴 했는데…. 유나 넌 이 학교가 맘에 안 드나 봐?”

“당연하지. 난 경찰 딸이야. 이렇게 약한 사람 괴롭히고, 때리고, 심지어는 조폭들 자금줄이네 하는 소문까지 도는 이런 학교가 맘에 들 리가 없잖아?”

“그런데 왜 이 학교로 온 거야?”

“아빠가 이 학교 출신이거든. 그것 때문에 많이 싸웠는데…. 아빤 경찰서장이지만, 딱히 경찰다운 경찰은… 어쨌든! 난 싹 다 바꾸고 싶어! 좋은 방향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유나가 고개를 천천히 내렸다. 

“하지만 나 혼자 힘으로는 무리인지도 몰라. 오늘 같은 일이 벌써 한두 번이 아니거든. 게다가--” 

유나는 인희의 이야기를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말해서 좋을 것 같지 않았다. 옥상 아래로 학교를 내려다보며 우람이 말했다. 

“바뀔 거야. 이제부터.” 

“응?”

유나는 옆에 선 우람의 단호한 표정을 지은 얼굴을 보자, 어째서인지 뺨에 입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유나는 점점 더 우람에게 끌려갔다. 둘은 같이 하교하기 시작했다. 유나가 질문을 던져도 우람은 항상 얼버무리기만 했다. 자신과 우람이 사이의 거리를 더 좁히고 싶었다. 

좁혀지던 거리는 급격히 멀어졌다. 우람이 인희 일당과 어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인희는 용돈이 많았다. 인희 일당의 물주 노릇을 하는 우람에게 유나는 큰 실망을 했다. 처음에는 억지로 돈을 뜯기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유나는 옥상에서 건물 뒤쪽에 모인 인희 일당과 함께 입에서 능숙하게 담배 연기를 뿜어낸 우람을 발견하고 말았다. 유나는 저도 모르게 옥상 난간 뒤로 숨었다. 눈물이 났다. 그날 이후 유나는 우람과 같이 하교하기를 멈추었다.

유나가 그나마 마음이 놓인 것은 학교가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한 달 동안 인희의 부하들이 나쁜 짓을 할 때 마다 그곳에는 선생님과 경찰이 나타났다. 교육청 공무원들이 잇달아 방문해 실태조사를 했고 보여주기 식이나마 금연 캠페인, 피임 캠페인이 벌어졌다. 아무리 덩치 크고 두목노릇을 해봤자 결국은 십대 소년인 인희는 초조해져서 행동거지가 거칠어졌다. 집에서는 아버지가 짜증을 냈다. 청소년 담당 업무가 갑자기 늘어난 탓이라고 엄마가 귀뜸을 했다. 괜히 성질 건드리지 말고 조용히 있으란 의미였다. 애초에 유나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우람의 더러운 면을 발견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우람이 전학 온 지 한 달 반이 되는 날이었다. 점심시간에 옥상에 올라온 유나는 학교 건물 뒤 담배 피우는 구석에서 인희 일당에게 둘러싸인 우람을 보았다. 거리가 멀어 무슨 말을 하는 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하는 행동은 똑똑히 보았다. 

인희 일당은 우람의 지팡이를 뺏으려 들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댔다. 거칠고 야만적인 폭력이 확실하게 우람의 작고 연약한 몸으로 파고들어갔다. 싫증이 난 듯 인희 일행이 떠나자 바닥에 쓰러진 우람이 지팡이를 더듬어 들고 일어나 사용하지 않는 문 앞에 놓인 작은 계단에 걸터앉았다. 유나는 우람이 그들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자업자득이야, 유나는 생각했다. 날 배신한 벌을 받은 거야. 유나는 입술을 깨물고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날 배신한 벌이야. 날 배신한 벌이야. 

우람은 먼지를 툭툭 털고 주변을 살피더니 담배를 꺼냈다. 피우지마, 유나가 생각했다. 우람이 담뱃불을 붙였다. 제발. 우람이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나쁜 놈. 유나가 눈가를 닦았다. 먼지가 들어간 모양이라고 유나는 생각했다. 우람이 고개를 들었다. 순간 둘의 눈이 마주쳤고, 우람이 황급히 담배를 껐다. 웃음을 짓는 우람의 얼굴에 유나는 침을 뱉고 싶었다.

그날 하교길에 우람이 말을 걸었다. 십육일 만의 일이다. 도대체 넌, 유나가 생각했다. 

“있잖아.”

우람이 유나의 어깨를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 유나가 손을 뿌리쳤다.

“미, 미안.” 

우람이 말했다. 

차라리 사과를 하지 마, 진실을 말해줘, 유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꼴좋네?”

“뭐가?” 

“양아치들 물주 노릇하다 버림받으니까. 아까 다 봤어. 엄청 얻어맞던데? 왜, 이제 용돈이 다 떨어져서 그래? 너도 똑같아! 그 놈들이랑!”

“…….” 

“솔직히, 나 많이 혼란스러워. 넌…… 인희나 다른 애들이랑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난…….” 

“유나야, 오해야. 사실…….”

“뭐가 오핸데?!”

“저기, 미안한데 말이지.” 

누군가 두 사람의 등 뒤에서 말을 걸었다. 최건형이었다. 그가 비굴한 웃음을 띠고 말했다. 

“우람아, 잠깐 교무실로 좀 따라올래?” 

“알겠습니다.” 

우람이 앞서가는 건형의 뒤를 따라가다 뒤를 돌아봤고 유나와 눈이 마주쳤다. 우람이 다시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망설이던 유나가 뒤를 쫓다, 비명을 질렀다. 건형이 우람의 지팡이를 빼앗아 구타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친 손길이 유나의 비명을 막았다. 인희였다. 몸을 비틀며 저항해도 인희의 큰 체격과 강한 힘 앞에는 아버지에게 배운 합기도 호신술도 소용없었다. 



3


인희는 체육창고로 유나를 끌고 갔다. 체육창고 안에는 최건형이 바닥에 쓰러진 우람의 머리를 발로 짓밟고 있었다. 건형의 얼굴은 유나가 알던 얼굴이 아니었다. 인희보다 더더욱 비열하고 잔인한 얼굴이었다. 고양이가 먹이로 잡은 쥐를 가지고 놀듯 빼앗은 지팡이로 툭툭 때리며 건형이 말했다. 

“너무 나댔어. 내가 병신이라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았냐? 응? 그렇게 나대면서 안 들키길 바라면 안 되지. 너, 교육청 끄나풀이지?” 

“교, 교사가,” 

우람이 말했다. 

“학생들의 비행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해서, 범죄 예비군으로 만들고, 뜯어낸 돈을 착복하고…… 게다가 지역 조직 폭력배들에게 소개하고! 그러고도 교사냐!”

“닥쳐!” 

최건형이 말했다. 

“어차피 왕따 당할 놈은 당하고! 팰 놈은 패! 그게 세상 돌아가는 거야! 어차피 놔두면 알아서 지들끼리 계급 만들고 싸우는 거라고!” 

최건형이 지팡이로 우람을 내려쳤다. 우람이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았다. 

“다리병신 새끼가!” 

두 방. 세 방. 네 방. 다섯 방을 넘긴 뒤로는 세고 싶지도 않아 유나는 눈을 감았다. 인희의 웃음소리가 좁고 어두운 체육창고를 울렸다. 유나는 이 악몽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랬구나, 유나는 생각했다. 인희 일당을 속이고 정보를 빼돌리기 위한 것이었어. 우람이는 나쁜 아이가 아니었어. 우람이 얻어맞는 것 때문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한구석으로는 안심감이 들었다.

체육창고의 문이 열리고 빛이 들어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유나의 아버지 박충남이 들어온 것이다. 유나가 인희를 뿌리치고 상황을 설명하려 하는데, 박충남이 딸의 뺨을 갈겼다. 

“감히 아버지 사업을 방해해! 당장 저리로 꺼져 있어! 야, 너!” 

박충남이 구인희를 주먹으로 후려쳤고, 바닥으로 쓰러지는 턱을 무릎으로 쳐올렸다. 인희가 기절했다. 

“어린 노무 새끼가… 일 처리 똑바로 안하고. 야! 최건형이! 비켜봐! 이 새끼냐? 교육청 쁘락치 새끼!” 

최건형을 떠민 박충남이 쓰러진 우람의 배를 발로 수차례 걷어찼다. 지팡이가 바닥에 쓰러진 유나 앞으로 굴러갔다.

“경찰도 한패였군…….” 

우람이 말했다. 

“일정한 건수를 손쉽게 올리고, 돈도 뜯어내는 구조였어……. 불량학생을, 조직폭력배를, 폭력을 만드는 공장…… 성북공고는 이 더러운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공장이었어! 제 욕심 때문에 수많은 학생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예민한 시기를 마음에 상처 받은 채 보내게 만드는 네놈들을, 난, 절대 용서 못해!”

“XX 새끼가!” 

박충남이 우람의 옆구리를 걷어차고 머리를 짓밟으며 말했다. 

“그럼 어쩔 건데! 앙? 어쩔 거냐고!” 

“유나야! 지팡이를!” 

비명 섞인 목소리로 우람이 외쳤다. 

무의식중에 유나가 지팡이를 던졌다. 쓰러진 채로 지팡이를 받은 우람이 그대로 박충남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박충남이 주저앉자, 우람이 일어서는 기세로 턱을 차올렸다. 그 사이 최건형이 달려들어 우람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 했다. 유나가 일어나 건형에게 매달렸고 덕분에 틈이 생겼다. 우람이 최건형의 손아귀 밖으로 빠져나왔다. 교복 셔츠가 찢어져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우람의 흉터 난 근육질 상체가 드러났다. 최건형이 뒷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버튼을 누르자 예리해 보이는 날이 튀어나왔다. 우람이 지팡이의 손잡이 부분을 비틀었다. 그 순간 최건형이 달려들었다. 우람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손잡이 부분이 최건형을 향해 날아들었다. 손잡이 부분과 연결된 쇠사슬이 최건형의 목을 감아 조였다. 우람이 지팡이를 잡아당겼다. 목줄 메인 강아지처럼 최건형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우람이 나이프를 멀리 차고 최건형의 어깨를 지팡이로 내리쳤다. 최건형이 기절했다. 

우람이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순간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런, 너무 무리했나?”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우람이 바지 뒷주머니에서 작은 기계를 꺼냈다. 

“다행히 안 망가졌네.” 

그 기계는 녹음기였다. 되감기 버튼과 재생 버튼을 차례로 눌러, 그들의 증언이 제대로 녹음되었는지 확인했다.

유나가 달려와 우람을 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우람은 유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참동안 울던 유나가 말했다. 

“우람이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일단, 밖으로 나가자. 몸이 너무 아파.”

두 사람은 체육창고 밖으로 나갔다. 우람이 유나의 도움을 받아 체육창고의 문을 잠갔다. 

“이제 괜찮아.”

부축을 받던 우람이 지팡이를 짚으며 말했다. 

“덕분에 살았어, 유나야. 고마워. 속여서 미안해. 어쩔 수 없었어. 신분상…….”

“007, 같은 거지?”

“응? 아, 맞아. 그런 거야.”

“그럼 신분을 들켰으니, 영화처럼, 그러니까…….”

“맞아. 떠나야 해. 다른 학교에도 여기처럼 문제가 있는 데가 있으니까. 이제 다른 분들이 와서 뒷정리를 해줄 거야. 그때는 잘 부탁해요, 학생회장님.”

“놀리지 마시죠, 교육청 프락치 님.”

둘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을 때까지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묘한 긴장감이 주먹 두 개 정도 떨어진 두 사람의 어깨 사이 거리를 뻣뻣하게 만들었다. 유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교육청 공무원이야?”

“그런 셈이지.”

“학생이 공무원이 될 리가…… 설마! 몇 살…… 이에…… 요?” 

“28살.”

“헐.”

“이제야 좀, 여고생 같네.”

우람이 멋쩍게 웃었다. 

“내 이야기, 들려줘도 될까?”

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일이었어.” 

우람이 담배연기를 뿜으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난 왕따를 당했고, 학교폭력에 시달리다가 불량한 애들에게 떠밀려서 교통사고를 당했지. 5년 정도 식물인간으로 지냈데. 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 난 이미 퇴학처분이었어. 당연한 거지. 15살이었던 내가 순식간에 20살이 되어 있었어.

“3년 동안은 재활치료로 보냈어. 말이 좋아 재활이지, 차라리 죽었으면 싶을 정도로 아팠어. 온 몸의 근육이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아픔으로 알리는 식이지. 그래도 난 이를 악물었어. 잃어버린 학창시절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선생님이 되어서 다른 아이들의 학창시절을 지켜주리라 생각했었거든.

“결국 한쪽 다리는 영원히 다리를 절게 되었지만 운동도 무술도 연습했고, 공부도 열심히 했어.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그런데 선생님이 되지는 못했어. 영화 무간도 본 적 있어?”

유나가 고개를 저었다.

“여하튼 15살 모습 그대로인 나한테 교육청이 일종의 잠입 스파이 일을 맡긴 거야. 학생들 틈에 몰래 잠입해서 정보를 수집하라는 거지. 그래서 원래는 눈에 띄는 짓을 해서는 안 되는데.”

“나 때문에 그런 거죠….”

“아버지 일은, 미안해.” 

“괜찮겠, 어?” 

“응? 뭐가?” 

“미래의 장인어른이 부패 경찰이어도? 뭐, 그 장인을 두들겨 팼으니 쌤쌤이려나?”

“너랑 난.” 

우람이 일어나며 말했다. 

“열 살 차이야. 게다가 난 계속 나이를 먹겠지. 이 모습 그대로겠지만. 게다가 이런 험한 일 하고 있고. 넌 아직…….” 

“안 어려요! 아니, 안 어려! 내년이면 나도 성인이고 대학생이고…… 그리고…….” 

유나도 일어서 우람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열 살 차이가 대수야? 그래도 우린 같은 반 친구잖아!”

우람은 햇빛을 후광처럼 흩뿌리며 진지한 얼굴을 한 유나를 바라보며, 눈앞의 소녀가 자기에게 품는 이 열병이 한 때의 두근거림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자신에게 놀랐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

유나가 말했다. 

우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만큼은 보고서를 쓰고 끝내야 할 잔업도 생각나지 않았다. 

우람이 유나의 볼에 입을 맞췄다. 

“이 다음은 내년으로 미룰게.”

유나가 뺨에 남은 감촉을 손끝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난 미루는 거 싫은데. 그런데…….”

“왜?”

“나중에 너무 성숙해져서 오히려 내가 연상으로 보이면 어쩌지?” 

“벌써 반말하고 있으면서.”

“담배나 꺼. 나 담배냄새 나는 입술에는 키스하고 싶지 않으니까.”

우람이 웃으며 담배를 껐다. 유나가 우람의 뺨에 입을 맞췄다.





손지상

세미프로를 자처하는 소설가, 번역가, 자유기고가.

여러 장르의 작법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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