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11월 18일 제우미디어에서 수잔 이의 『엔젤폴 』(신윤진 옮김, 396쪽, 12,800원)이 출간되었다. 거대한 날개를 가진 천사가 지상을 침공한 지 6주 만에 세계는 질서가 붕괴되고 혼란에 빠진다. 인간과 천사가 대립하는 가운데 천사와 함께 길을 떠난 소녀가 목도하는 진실과 인류의 운명을 다뤘다.


11월 20일 문학동네에서 귀뒬의 『지옥에서 온 여행자 』(이승재 옮김, 460쪽, 13,800원)가 출간되었다. 열네 살 소년 발랑탱과 블루 할머니가 등장하는 세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었으며 각각의 이야기는 천국으로 향하는 유령, 시간을 되돌리는 약, 저주와 시간 이동을 주 소재로 삼았다. 사춘기 소년의 감정을 유쾌하게 그린 작품이다.




SF


11월 11일 새파란상상에서 레리 니븐, 에드워드 M. 러너의 『링월드 프리퀄 1: 세계 선단 』(고호관 옮김, 488쪽, 14,000원)이 출간되었다. 래리 니븐 컬렉션 세 번째 작품으로 『세계 선단 』으로 시작되는 선단 시리즈는 본편의 과거 이야기를 다뤘다. 


11월 15일 창비에서 한낙원의 『금성 탐험대 』(400쪽, 12,000원)가 출간되었다. 『금성 탐험대 』는1962년부터 1964년까지 잡지 『학원 』에서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로 복간되었다. 초기 과학소설의 특징이 살아 있는 고전 SF로, 금성 탐험 로켓과 비밀 조직, 외계인이 등장한다. 또한 작가의 탄생 90주년을 기려 2014년부터 절판된 작품을 복간하고 월간  『어린이와 문학 』지에서 작가의 이름을 딴 ‘한낙원 과학소설상’을 진행될 예정이다.


11월 18일 씨앗을뿌리는사람들에서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보르코시건 4: 보르 게임 』(이지연, 김유진 옮김, 512쪽, 14,800원)이 출간되었다. 보르코시건 시리즈 네 번째 작품으로 제국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마일즈 소위가 맡은 첫 번째 임무를 다뤘다.


11월 19일 북폴리오에서 롭 리이드의 『이어 제로 』(박미경 옮김, 453쪽, 13,800원)가 출간되었다. 엄청난 규모의 저작권 침해와 부채로 인해 우주가 파산 위기에 처하게 되자 외계인 팝가수와 변호사가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하계를 누비는 코믹한 작품이다.


11월 22일 북로드에서 마리사 마이어의 『스칼렛 』(김지현 옮김, 524쪽, 13,800원)이 출간되었다. 전작 『신더 』에서 이어지는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평범한 프랑스 소녀 스칼렛과 정체불명의 소년 울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스칼렛이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할머니를 찾기 위해 위험한 숲 속으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11월 29일 불새에서 제임스 블리시의 『양심의 문제 』(안태민 옮김, 304쪽, 13,400원)와 C. M. 콘블루스의 『신딕 』(안태민 옮김, 272쪽, 13,400원)이 출간되었다. 

『양심의 문제 』는 원죄가 존재하지 않는 행성에 파견된 예수회 신부이자 생물학자인 주인공이 그곳에서 만난 외계인을 과학적, 그리고 종교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신딕 』은 두 범죄조직이 미국 정부를 아이슬란드로 쫓아낸 세계를 배경으로 복수를 위해 범죄조직 신딕을 떠나 정부의 영토에 잠입한 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진실에 대해 다뤘다.




미스테리 


11월 4일 펄스에서 모 헤이더의 『난징의 악마 』(최필원 옮김, 550쪽, 14,800원)가 출간되었다. 난징 대학살과 관련된 장면을 보고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던 그레이는 난징 대학살을 기록한 16밀리미터 필름의 존재를 알게 되어 필름과 필름의 소장자이자 대학살의 생존자인 교수를 만나기 위해 도쿄로 향한다. 작가는 학살과 인육 밀매 등 근대사의 어두운 부분을 재조명한다.


11월 15일 엘릭시르에서 요네자와 호노부의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권영주 옮김, 288쪽, 12,000원)와 『빙과 』(권영주 옮김, 256쪽, 12,000원)가 출간되었다. 고등학교 고전부 학생들이 일상생활에서 발생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 <빙과>의 원작 소설로, 독자의 예상을 뒤집고 청춘의 어두운 면까지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고전부 시리즈에 속하는 이 두 작품을 포함해 총 다섯 권의 시리즈가 모두 출간될 예정이다.


11월 15일 작가정신에서 가와이 간지의 『데드맨 』(권일영 옮김, 384쪽, 13,000원)이 출간되었다. 도쿄에서 시체의 각자 다른 부위가 사라지는 여섯 건의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어느 날 담당 형사 앞으로 사라진 부위들로 만들어졌다는 데드맨으로부터 단서가 담긴 메일이 와 숨겨진 진실을 밝혀 나가는 작품이다.


11월 15일 재인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김난주 옮김, 424쪽, 14,800원)가 출간되었다. 올림픽 국가 대표 출신인 스키 스타 히다는 우연히 딸 카자미가 자신의 친딸이 아니며 납치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뻐꾸기의 탁란 습성에 빗대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풀어낸 작품이다.


11월 19일 시공사에서 요코미조 세이시의 『백일홍 나무 아래 』(정명원 옮김, 316쪽, 12,000원)가 출간되었다. 국내 출간된 긴다이치 코스케 열한 번째 작품이자 두 번째 중단편집으로 네 편의 시리즈 초기작을 수록했다.





송한별

‘창작집단 몽니’의 우두머리. 소규모 출판 기획 및 편집자. 그러한별. 

newshbx2@naver.com   @newshbx2

선생님, 좋은 펀드 하나 있는데……


이 코너의 앞선 세 글은 국내 SF 시장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제 미래에 대해 말해보자. 앞으로 팬덤이 SF 시장에 어떤 방식으로 능동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를 검토해볼 때다.


팬덤이 자급자족하는 동인지형 시장으로의 변화가 가장 안정된 방법이다. 최근 각광받는 크라우드 펀딩 역시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성되면 그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팬들이 펀딩(선입금)을 하는 방식이다. 판매는 펀드 참여자를 위시한 팬덤 내부의 소비로 이루어진다. 이 경우 서점 배본 등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최소 부수를 1000부 수준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주문자에게만 배급하는 한정 제작도 가능하다. 따라서 프로젝트가 아예 엎어지지만 않는다면 손해 보는 장사를 할 확률이 낮다. 만들고 싶은 사람이 만들고, 사고 싶은 사람이 사는 이상적인 시장이다. 아아, 이윤보다 사랑이 우선하는 유토피아……. 

이 방식에는 팬덤의 폐쇄성으로 귀결되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아마추어 프로젝트의 경우 저작권 등의 문제로 에이전시와 협상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저작권 시효가 만료된 작품 위주로 진행될 확률이 높고, 그 정도로 오래된 SF는 기존의 매니아 밖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낮다. 또한 제본이나 편집, 표지 등을 둘러싼 완성도의 문제도 있다. 이 역시 매니아들은 ‘SF로 대동단결’ 연대의식을 통해 아마추어 수준의 완성도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일반 독자들의 주의를 끌기는 더 어려워진다. 거기다 서점 등을 통한 일반적인 판매 루트를 이용하기가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위 문제들은 그저 ‘이미 SF를 사랑하는 우리’가 보다 즐거운 독서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점점 어두워지는 미래를 밝히고자 한다면 여기에서 만족할 수는 없다. 과학자가 되고 싶은 아이들이 많았던 시절에 SF를 영접한 소년소녀들은 이제 40대가 되었고, 이 연령대를 기점으로 SF 구매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는 절대인구수의 감소나 독서인구의 감소로 인한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낙폭이 분명한 수준이다. 다시 이 불씨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 위에서 단점으로 지적한 부분을 극복하면 그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놀라운 판매고를 올린 황금가지의 ‘파운데이션’ 박스세트가 좋은 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개인이나 소규모 프로젝트를 넘어 기업화된 조직구조가 필요하다. 바로 출판사다. 잠깐. 나는 이 코너의 지난 글에서 SF 출판업계가 이미 한정된 자원을 소모하면서 점점 축소 중이라고 썼다. 그래서 기존 출판 시스템의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시 결론이 출판사로 이어져도 될까?

가능성은 있다. 브로커를 쓰면 된다. 방식은 다음과 같다. 출간을 원하는 타이틀 하나를 정해 팬들이 ‘선금’을 브로커에게 입금하고 그 참여 인원수는 웹상에 실시간으로 고지된다. 이 돈은 실제 비용으로 사용되기보다는 책이 발간되었을 때 구매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하는 용도로 쓰일 것이다. 자, 『A』라는 타이틀이 보고 싶어서 만원을 선입금한 독자들의 숫자가 늘어가는 게 보인다. 그걸 지켜보다 ‘이 정도 초기 구매자가 받쳐주면 해볼 만하겠다’고 판단한 출판사가 『A』를 출간하고 싶다고 브로커에게 연락해 출간을 약속한다. 책이 출간되면 브로커는 계약한 출판사에게서 선주문량만큼 책을 구매한 뒤 선주문자들로부터 잔금을 받고 책을 넘겨준다. 팬들이 희망하는 타이틀을 내면서 출판사의 리스크도 줄이게끔 기획한 변형 펀딩이다.

자, 이제 고양이 목에 방울은 누가 달까? 펀드 은행의 역할을 할 정도로 재정적인 신뢰가 있고 출판사와 소통할 여지도 많은 사람은 누구일까? 내가 생각한 제1후보는 대형 서점이다. 실제로 알라딘에서는 기존의 자체 북펀드를 강화하는 방식 중 하나로 이 방식을 검토 중에 있다. 현실적인 문제가 몇 가지 남아 있다. 예비 독자를 모집하는 도중에 출판사가 브로커와 논의 없이 몰래 저작권 계약을 한다거나, 선주문 판매를 베스트셀러 집계에 넣을 수 있는가 등의 절차적 문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고심 중인, 아직 미완성인 방식이다.


이 미완의 계획을 여기 늘어놓은 이유는 하나다. 다른 누가 먼저 실행해도 좋고 맹점을 지적해도 좋고 변형 발전을 도모해도 좋고 좋은 아이디어를 제보해주셔도 좋다. 팬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여서 숨구멍이 하나라도 더 뚫리면 그걸로 오케이다. 물론 그중 대부분의 가능성이 엎어지고 그만큼 많은 미래가 삭제되겠지만, 나는 이 코너의 첫 글에서 이미 말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바로 역전의 SF 용사, 스파르타 최후의 ‘300’이라고. (웃음)





최원호

현재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외국소설/예술 담당 MD.

아이디어 제보나 각종 논의 또는 항의를 원하시는 분은 트위터 @warnerous 또는 submind@aladin.co.kr로 연락 주시기 바란다.

과학소설(이하 SF)의 묘미는 무엇일까? 장대한 시공간을 넘나들며 벌이는 모험을 보면서 느껴지는 쾌감일까, 아니면 치밀한 과학적 사고로 도출되는 지적 만족감일까, 아니면 대한민국 상위 0.001퍼센트의 사람들만 가진다는 배타적 멤버십을 보유했다는 만족감일까?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각양각색인 만큼 사실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도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대체로 보면 희미한 그 공통점을 일컬어 ‘경이감’이라고 부르는 듯하다. 그렇다면 나는 SF업계에 종사하면서 지금 어떤 ‘경이감’을 느끼고 있을까?

우선 내 입장에서는 가장 궁금했던 수수께끼가 하나 풀려서 기분이 좋다. 출판계에 입문하기 전, 나는 도대체 SF 바닥이 얼마나 힘들어서 대기업도 간만 보고 발을 빼며, 중견 출판사들도 찔끔 싸고 도망가는지 정말 너무 궁금했다. 에누리 없는 장사 없다더니 뻥 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애정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분노도 들었다. 하지만 출판사에 취직하지 않는다면 알아낼 수 없는 정보니 내가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다. 항해의 중간기착지에 도착해 주판을 튕겨보니 앞으로 판매될 수 있는 최대수치는 권당 대략 평균 300권 수준일 듯하다. 이 중 20퍼센트 정도는 도서관 납품용이었으니 개인고객의 수는 아마도 250명 언저리 수준일 것으로 생각된다. 약간은 이른 판단이지만, 선인세도 회수하기 힘든 실적이니 최초의 실험모델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가 적다고 실망한 건 아니다. 이 바닥에 뛰어든 나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모두 이 정도 수준일 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정상적인 상업논리로만 치자면, 어쨌든 큰 출판사들이 이 바닥에서 빠져나가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절대 발 붙일 수 없는 황무지다. 하지만 어렵다고 쉽게 포기하지는 말자. 『달을 판 사나이』의 주인공인 디디 해리먼이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논리대로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부동산에 투자해 월세만 받아먹고 산다거나, 대부업을 통해 이자로 재산만 불린다면 주변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들의 허세만 만족시켰을 거다. 그리고 그가 그런 삶을 살았다면 평생 몸은 편했을지 몰라도 아마도 마지막 눈감는 순간이 왔을 때 자신의 소중한 인생과 꿈을 남만 만족시키느라 희생시킨 선택에 대해 후회했을 것이다. 동시에 우리들 역시 그의 인생에 대해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SF의 또 다른 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주인공. 사실 달에 가는 것도 유치한 수준이다. 코찔찔이 애송이가 외계 침략으로부터 인류 전체를 구원하고, 심지어 장애를 가진 아이도 군 최고사령관이 되어 우주와 전쟁을 벌이지 않는가? 시련의 스케일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 힘들다 소리나 하지, SF팬으로서 고작 책 팔이가 힘들어서 나자빠지면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일찍이 맹자가 자신의 왕도를 설파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하늘의 때가 땅의 이로움만 못하고, 땅의 이로움은 사람들 사이의 화합만 못하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출판계로 치자면, 하늘의 때天時는 경제상황이요, 땅의 이로움地利은 해당 분야요, 사람들 사이의 화합人和은 독자다. 인터넷서점도 매출이 줄어드는 최악의 시장상황에, 하필이면 안 팔리기로 유명해 모두가 정체를 숨기고 판매하는 SF 분야에, 독자수도 전체인구의 0.0006퍼센트만 존재하는 이곳에서 살아남기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인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250여명의 독자층이야말로 훌륭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수는 적더라도 10년 넘도록 이어지는 고난의 행군에서도 살아남은 소수의 열성팬들이다. 맹자도 말했듯 천시, 지리보다 중요한 건 인화다. 300명의 스파르타 군사가 페르시아의 100만 대군을 막아낸 이야기는 유명하지 않은가? 아니, 부서지기 직전인 12척의 배를 가지고 300척이 넘는 적의 정예함선을 명랑에서 박살낸 충무공의 선례도 있지 않은가?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승전을 이끈 전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악한 품질이지만 서슴없이 책을 사주고,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도서관에 신청까지 해주는 훌륭한 독자들이 있고, 게다가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시간을 벌게 해주려고 독자들과 알라딘 측에서 특혜에 가까운 스페셜 북펀드도 성사시켜줬는데 회사가 망하게 된다면 운영전략을 잘못 세운 출판사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전략이 있을 수 있을까? 사실 글을 적고 있는 나도 모른다. 위력적인 투구로 경기를 압도하는 투수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요리조리 꾀를 굴려가며 맞춰 잡는 형태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주 예외적인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구매자 수는 큰 변동을 보이지 않는 일종의 상수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 기반을 두고 전략을 세워야만 할 것이다. 

그중 한가지로 북펀드를 예로 들어보자. SF분야에서 기존 방식의 북펀드는 성공하기 힘들다.(우리가 했던 건 구매까지 일정 부분 해주는 스페셜 북펀드였음을 감안하자) 북펀드도 일종의 채무인데, 채무를 갚기 위해서는 빌린 돈(A) 이상의 돈(B)을 출판사가 벌어야 한다. 그런데 (B)가 (A)보다 훨씬 못 미치는 지금의 상황에서 북펀드를 성사시키더라도 결국 출판사는 대출을 받아서 (A)를 갚아야 할 수밖에 없다. 당장의 생존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고 결국 부채는 쌓여가다 언젠가는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다. 전통적인 전략으로는 절대 이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어떤 전략이 있을 수 있을까? 역시나 답은 없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내가 하는 고민 역시 이전의 누군가가 분명 오랜 시간 머리를 싸맸을 거라는 점이다. 참고할 수 있는 그 기록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이 사라져버렸다. 특히나 온라인상에서 축적되었던 방대한 자료들은 모두 사라진 상태다. 박상준 선생이 운영하는 SF아카이브란 곳이 있지만, 비공개이며 심지어 주소도 나오지 않는다. SF판타지 도서관도 서적 위주라서 온라인 자료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 PC통신 시절의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의 게시판은 물론이고, △정크SF, △월간 SF웹진, △SF readers 같은 장소에 쌓여 있던 자료 모두 유실되었다. 온라인 자료의 문제점이 바로 이런 것이다. 책으로 나왔으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복사라도 해 새로 진입하는 뉴비나,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을 터인데, 도무지 방법이 없다. 그곳에 쌓여 있는 서평들이나 분석 글들은, 직접 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이후에도 크게 상황이 변하지 않은 국내 SF시장 상황상 지금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누군가 자료를 백업해놓으신 분 있으시면 아래 필자 약력의 이메일 주소로 연락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지금은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상시적(?) 비상 상황이다.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것 같다. 가끔 언론기사나 SNS 계정을 통해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그 발언 뒤에는 ‘가족 때문에’, 또는 ‘현실 때문에’ 결국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SF출판업은 사람들이 꿈꾸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좋은 분야다. 우리 회사만 보더라도 첫 출간 초기에 번역자 갈아 마신다고 롤러코스터를 탔던 그 모습은 한 편의 액션 스릴러였고, 지금 판매량을 보면 호러며, 인간이 불쌍하다고 한 푼 두 푼 건네주신 독자님들과 무료 노예사역에 동원된 친구들의 우정을 보면 휴먼 드라마다. 아직 흥행 결과도 나오지 않아 흥미진진한 한 편의 영화이자 드라마다. 책도 내고 영화 속 주인공도 될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 나 같은 문외한도 무능함을 드러내는 뻔뻔함과 욕 먹을 용기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니, 많은 분들께서 이 분야에 동업자로 참여해주시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백지장도 여러 사람이 들수록 일은 더욱 쉬워진다.





안태민(firebird_pub@naver.com)

SF출판사인 ‘도서출판 불새’에서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돌부처 대표를 상전으로 모시고, 계약, 번역, 편집, 판매, 세무 등 모든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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