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규칙을 싫어해요




소설집 『각인』의 날개에는 “좌뇌는 내팽개치고 우뇌로 써온 글”이라는 문장이 붙어 있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인간의 좌뇌는 이성·현재의식·논리·분석 등을 담당하고, 인간의 우뇌는 상상·직관·장기기억·잠재의식 등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소설은 논설문이 아니며 소설의 언어는 일상의 언어와 같지 않다. 사실 작가가 단언하고 있는 만큼 『각인』의 서사가 불친절함을 목표로 하는 소설들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인상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는 것은, 박애진 작가의 서사가 기본적으로 매우 탄탄하다는 것을 오히려 반증한다.



“왜 하나같이 고독할까.”


작가는 이 소설집에 있는 글들이 “세상 기준에서 소수에 속하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말 못할 자기만의 아픔이 있는 사람, 스스로 숨는 걸 택하거나 숨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기술한다. 작가에게 이 외로운 사람들의 ‘외로움’에 대해 질문하였더니, ‘우뇌적 작가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게요, 얘네 왜 이러지. 왜 하나같이 고독할까.”

“살아가는 건 결국 혼자라는 것, 삶은 견뎌야 될 무엇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계속 쓴 거죠. 삶이 왜 이렇게 고독하고, 왜 이렇게 힘들고, 왜 자꾸 견뎌야 할 무게가 되는 걸까. 태어난 이상 살아야 하고, 그건 생명의 대전제이자 정언명령이죠. 그런데도 산다는 것은 왜 이렇게 사람을 먹먹하게 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이었죠.”


인간과 인간이 서로 도플갱어처럼 연결되어 있고,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없는 한에야 인간과 인간은 분명 홀로이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서로를 엮어나가려고 노력하고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환각을 느끼고 싶어한다. 『각인』안의 단편 〈선물〉에서 남자 주인공 재민은 뱀파이어 혜연에게서 그 외로움을 충족시켰다는 환상을 어떻게든 추출해 내기 위해 자신의 피를 제공하면서까지 안쓰러울 만큼 노력한다.


재민은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피만 마셨다. 그녀가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재민은 확신했다. 그녀는 그를 떠나지 않을 거다. 어지러웠다. 더 잘 먹을 필요가 있었다. …… 괜찮다. 그녀는 여기에 머물고 있다. 재민은 눈을 감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다.  — 「선물」 중


『각인』 속 주인공들은 그 버거운 삶을 버텨내기 위해, 정언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 몸짓은 그야말로 비극적이다. 심지어 「일상」의 주인공은 죽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기도 하지만, 그나마 죽어지지조차 않는다. 버거운 삶을 탈출할 수도 없고, 위안을 찾을 수도 없는 이들에게 삶은 커다란 쳇바퀴와 다르지 않다.



“저는 규칙을 싫어해요.”


“저는 규칙을 싫어해요.”

도발적인 말이었다.

“왜 꼭 그래야 돼,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삶이 이렇게 버거운 이유 중에 하나는 개인이 사회에 비해 너무 미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내 세계의 주인공인데, 그에 비해서 나는 외부 체제에서 너무 미약하고, 문제가 생기거나 불합리한 일을 겪었을 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굉장히 많은 경우에 그렇죠.

내가 세상을 과연 바꿀 수 있을까? 한 개인이? 한 개인이 자기 삶에서 희노애락을 겪으며, 크고 작은 일들 속에 절망하고, 좌절하고 극복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가도 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요. 인간이란 하나의 존재가 너무 작아서 생기는 박탈감이 있어요. 저는 영웅물에 굉장한 반감이 있었던 거예요. 한 사람이 세계를 바꾸고, 세상을 구할 수 있겠어요? 극소수의 사람들만 해내죠. 대다수는 실패해요.  누군가 이름을 날렸을 때는 그 사람을 돕거나 그 사람에게 희생당한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 아무도 기억하지 않죠. 그러다보니까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 개인이 어떻게 살든 체제는 체제대로 굴러가는 이야기들을 쓰게 된 것 같아요.”


박애진 작가의 중단편 중 독자들에게 유난히 많은 사랑을 받았던 「학교」는 바로 그 이야기다. 작가는 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이 가지는 상징성에 청소년이라는 주인공들을 덧씌워 매우 매력적인 ‘체제유지의 비극’을 그려낸다. 주인공은 살아남기 위해서 눈에 띄지 않게 타인들을 몰아낸다는 전술을 세우지만, 결국 패배한 채 체제 밖으로 몰려나서 희생 제물이 되지는 않아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호모 사케르’로 살아간다. 


절대 이기지 못할 것이다. …… 모두 날 공격할 것이다. 난 제물이 될 것이다.  

— 「학교」 중


주인공 혜경은 희생되지 않고서도 체제의 강고한 지속성을 선험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행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결국 살아남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세상은 고통에 차 있고 그 근원 중에 하나가 가족이에요."


「학교」의 경우는 학교라는 상징물이 등장하지만, 학교 외에 이 소설집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체제의 아이콘은 ‘가정’이었다. 이 소설들 속의 고독한 주인공들은 대체로 가정에서부터 선천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고독한 맥락을 형성해서 서사 안으로 뛰어들었다.


“저는 세계가 불안정해지고 사람이 가장 불안정할 때 가장 믿을 수 없는 게 가정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음험하고 가장 거친 폭력은 가정에서 일어나요. 가장 안전해야 할 곳이 집인데 사실은 그 집이 그다지 안전하지 않거든요. 정말 건강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기본적으로 세상은 고통에 차 있고 그 근원 중에 하나가 가족이에요. 가족이야말로 가식의 절정인 거예요. 아무도 자기 집의 문제를 선뜻 얘기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모든 가족이 하나씩은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요. 물론 없는 가족도 있겠지만 비밀이 있단 말이에요.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멀쩡한 가정이라는 전제가 깔려요. 가정이란 행복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거죠.”


가족은 시스템이 강제한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다. 아이를 낳으면 그 공동체는 곧바로 ‘가족’으로 지칭되며, 그 아이를 ‘행복하게 키워내야 할’ 의무를 자연히 지게 된다. 규칙이란 살아 있는 자들이 시스템을 꾸려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그 인위에 대해 박애진 작가는 가장 낮은 단계부터 의문을 제기한다. 


외로움, 일그러짐, 체제, 폭력이라는 단어가 한바탕 그녀와 나 사이의 공간을 쓸고 지나간 후, 나는 피실피실 웃으며 물었다.

“행복한 소품 같은 거 쓰고 싶다는 생각 안 해봤어요? 다 비극이잖아요. 비극이 아닌 게 뭐야, 대체.”

“그 점 때문에 작가로서 한계를 많이 느껴요. 사실 비극이 더 쓰기 쉽거든요.”

“그건 박애진 작가이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비극이 더 쓰기 힘들 수도 있어요.”

박애진 작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결국 혼자라고 생각하고 삶을 견뎌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직관에선 비극이 더 그리기가 쉬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생활을 하기 위해서 자신과 타인의 내면에 그렇게 내밀하게 들어가지 않는다. 모두가 홀로이며 삶은 버겁게 버티는 것이라는 진실을 목도한 순간 생활은 유지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행복이 있을 거라고 막연히 착각하며, 혹은 내 현실이 비교적 행복한 것이라고 멋대로 규정하며 삶을 지탱해 나간다. 박애진 작가는 굳이 그 환상의 벽을 부수어내어 보고 싶지 않을 내용물을 우리 앞에 끄집어 놓았다.



"인식하고 나면 또 깨고 싶어요. 이제는 큰 이야기 쓸 거예요."


헤어지기 전, 박애진 작가는 차기작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묘한 게, 제가 이걸 인식을 하게 된 거잖아요. 내가 개인이 체제를 바꾸는 이야기들에 손발이 오그라들고, 삶을 비극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었구나. 사람들의 질문을 듣고 생각하다가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오더라고요. 그러면 또 그게 깨고 싶어요. 규칙이 싫으니까. 다음번엔 영웅물을 써야겠어요. 나도 엄격하게 틀을 짜서 멋진 주인공이 단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소설을 쓰려고요. 좌뇌가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고.”

나는 칼 세이건의 말을 덧붙였다.

“한 인간도 별을 이루는 물질들로 구성되어 있죠.”

“아, 싫어. 이제는 큰 이야기 쓸 거예요.”

한 인간의 내면에 있는 우주를 거대하게 목도할 수 있는 그녀가, 그 인간들이 작용하는 더 거대한 이야기를 쓴다니. 나는 그 거대함에 대한 기대에 벌써부터 압도되어버렸다. 입안에서 별이 튀어나올 거 같은 표정으로, 그녀는 규칙 없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서영

소설 쓰는 사회주의자.

1987년에 태어났고, 국문학과 문예창작학을 전공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계의 모순을 반영하는 작업이기에, 세상사의 진행에 대한 극복할 수 없는 불신으로 글을 쓰고 있다.

2011년부터 환상문학 웹진 거울에 단편 「종의 기원」과 「성문 너머 코끼리」를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고 

2013년 온우주에서 작품집 『악어의 맛』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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