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다, 그 마음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수록작 「홍등의 골목」이 표제작인 이유는 뭔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고요. 원래는 「안나푸르나」를 표제작으로 하려고 했는데 그걸 통째로 들어냈죠. 책에는 수록이 안 됐어요. 「안나푸르나」가 저한테는 의미가 많은 글인데, 초기에 미숙할 때 쓴 거라 의미는 있지만 소설적인 면이 부족하다고 할까요. 그리고 책의 절반이 ‘이사나 연작’이니 연작 중에서 뽑는 게 맞겠다 싶기도 하고요. 개중 「홍등의 골목」은 주인공이 핵심적인 행동을 하는 부분이죠. 표지 이미지 잡기도 쉽고요. 홍등으로 검색을 해봤는데 사진도 예쁜 게 많더라고요.


「홍등의 골목」은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요?

사실 전 그 연작의 주인공들은 다 마음에 안 들어요. 다들 답답한 성격이라서. 그런데 「홍등의 골목」의 시작이 된 경험이 있어요. 제가 대학생 때 공부를 하려고 벤치에 앉아 수학책을 딱 펴놓으면, 정말 어디서 알고 왔는지 선교 동아리 사람들이 왔어요. 그걸 논파하기 위해 성경을 통째로 읽게 됐죠. 거기 보면 예수님이 “나는 산 떡이고……..” 하는 부분이 나오잖아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건 좋아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읽는 걸 보니까 배알이 꼴리는 거예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내놓으라고 하는 느낌. 만약 지금 시대에 예수님이 다시 태어나시더라도 사람들은 거지 취급이나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생각이 뭉치더라고요. 현대에 정말 구세주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어났는데 사람들은 걔를 핍박하고, 간혹 얘가 구세주일지도 모른다고 알아차린 사람들은 얘보고 “너는 구세주니까 우리를 위해 죽어”라고 할 거라고. 자기 손에는 피를 안 묻히지만 상대방을 보고 죽으라고 할 수 있는 게 바로 인간이 아닐까 싶었어요.


이사나 연작에서는 ‘소수자’가 많이 나오는데요. 일부러 초점을 맞춘 건가요?

이사나는 출생부터가 정말 희귀하잖아요. 그리고 고를 수 있다면 더 험난한 길을 갈 성격이죠. 제가 겪은 감정도 있어요. 한국에서 태어나 여자고, 오덕이고, 글 쓰는 사람 중에 자기가 소수자라는 인식을 한 번도 안 가져본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때의 답답함에서 나온 것 같기도 해요. 내가 뭐가 문제야, 하는 억울함이랄까요.


「작전동 김여사의 우울」이나 「나는 매문가가 되고 싶었다」도 ‘억울함’을 정말 잘 그리는데요. 둘 다 작가 본인에서 따온 주인공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화자가 겪는, 그리고 화자를 보는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억울함과 답답함이 확 느껴져요.

저는 한국에서 글 쓰는 여자가 평범하게 겪을 억울함 이상은 겪은 적이 없어요. 남들 겪는 것만큼 겪긴 했죠. 부족함 없이. (웃음)


인천 배경이 많이 나오잖아요. 실제로 살아본 곳이구나 싶어요. 인천에 대해 말한다면?

인천역에 부평 지하상가가 있는데 거기는 정말 미로예요. 가게들이 밥 먹듯 바뀌거든요. 가게를 보고 길을 기억하면 절대 못 찾아요. 바닷물은 지저분하고. 매립지 쪽에는 쓰레기 냄새가 계속 올라오고. 벌여놓은 공사만 많고 시에 얼마나 돈이 없는지 시청 공무원들이 월급을 하루 늦게 받은 게 신문에 나고. 회사 뒷산에서는 살인사건도 나고. 아주 좋아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마계 인천이죠.


그럼 「홍등의 골목」에 대해서는요?

그 배경이 차이나타운이에요. 인천은 하나의 도심이 없어요. 부도심이 계속 바뀌면서 인천을 발전시키는 형태에요. 거기는 옛날에 부도심이었으니까 거의 폐허에 가까웠는데,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다시 관광지로 살아나고 있어요. 뭐랄까, 21세기가 아닌 듯한 곳이죠. 「홍등의 골목」의 배경에서 200미터만 더 가면 「세콤, 지구를 지켜라」의 배경인 인천 교육청이 나와요. 「처형」 말고는 거의 인천이 배경이죠. 제가 사는 곳이니까 쓴 거지만, 인천이 소설의 소재로 매우 좋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장편 연재도 하셨고 만화 시나리오도 하셨는데, 단편집은 처음이잖아요. 뭔가 다른가요?

제가 블로그도 정기적으로 백업을 하거든요. 그거랑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쭉 정리해서 매듭을 짓는 느낌. 출간 준비하면서 기분이 굉장히 좋았는데요. 데뷔 이후에 만화 쪽 일을 많이 하게 됐었는데요. 계속 만화 일만 들어오니까 내가 글 쓰는 인간이 많나 하는 고민도 했었거든요. 콘티 작업하면서 좋은 것도 많이 있었지만 나쁜 것도 꽤 많았고요. 예를 들면 문장이 나빠진다든가. 그래서 따로 다시 공부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제 단편집이 나오니까, 이쯤 되면 글 쓰는 사람이라는 증명은 되겠구나 싶어요.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맞구나 싶어서 좋았어요.

이번에 작가의 말에도 쓰긴 했지만, 제가 글을 쓰겠다고 그러면 다들 비웃었어요. 집에서도 제가 글 쓰는 건 그냥 취미고 돈 벌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도 저를 보고 얘는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해주셨던 분이 있었어요. 이 책은 그 분께 드리는 책입니다.


글 많이 쓰셨잖아요. 마감을 성실하게 지키는 작가, 마감을 안 할 땐 다른 글을 쓰는 작가라는 이미지가 있는데요.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일단 마감을 지키지 않으면 다음 일이 안 들어옵니다. 그리고 제가 우울할 때가 있고 밝을 때가 있는데, 밝을 때는 글을 쓰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데로 가거든요. 그래서 일 년에 3분의 1씩은 글을 쓰지 않으면 못 견뎌요. 압력솥에서 기압을 빼는 느낌이랄까요, 글로 빼는 거죠.


작중에 외계인이 종종 등장하는데, 외계인이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더라도 외계인 자체가 해결책은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게 드러나요. 그런 생각은 어떻게 굳어졌는지도 궁금한데요.

계기는 따로 없어요. 하지만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해도…… 작중 개와 인간의 관계로 외계인과의 관계를 비교하는 부분이 있어요. 개가 보기에 인간은 신처럼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전능한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사람이 신처럼 여기는 외계인도 전지전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도 전능하지는 않다, 그런 생각이에요.


글은 어떻게 쓰게 되었나요?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읽고 나서요. 거기에 제로델이라는 단역이 나오는데, 걔한테서 이야기가 나올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 중학교에 갔더니 컴퓨터실이 있고 아래아한글 1.2 버전을 복사해주는 거예요. 그걸 들고 가서 디스켓에 추리소설을 썼어요. 처음에는 셜록 홈즈 패러디였고. 『레이디 디텍티브』 후기에도 썼지만 나중에는 마이크로프트가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썼어요. 홈즈가 데뷔하기 전에, 아직 말단 공무원이었던 20대의 마이크로프트가 자기 상사의 딸인 레이디가 짜증을 낼 때마다 하나씩 추리를 해주는 이야기였어요. 그리고 순정만화도 읽기 시작했었는데, 『바람의 나라』 팬픽을 쓰고 그랬죠. 

그 무렵에 고려원에서 국내 작가의 추리소설을 내주기 시작했죠. 그걸 읽다 한국이 배경인 걸 써보자 싶어서, 형사인 아빠와 중학생인 딸이 잘린 손목을 두고 범인을 찾아 국철 1호선을 타고 다니는 이야기를 썼었어요. 처음 책 한 권 분량을 썼던 건 고등학교 때네요.


애정으로 시작한 글쓰기네요. 그럼, 앞으로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읽으면서 계속 생각하게 하는 글이요. 감상적이고 마음으로 느끼는 글 말고, 내용이 풍부하고 레퍼런스가 많은 글이요. 덕후가 보면 좋아하고, 아닌 사람이 보면 신기하다 싶어서 찾아보게 되는 그런 글이요.


일반적인 의미에서 ‘생각하게 되는 글’과는 좀 다르네요. 공부하게 하는 글에 가까운데요.

그런가요? 찾아보는 것에서 생각이 시작되잖아요. 어차피 작가가 덕후인 이상 보편적인 독자의 보편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글은 쓸 수 없어요. 그보다는 특정 사람들에게 맞는 글을 잘 쓰겠죠. 저는 사람에게 공감하고 이입하고 하는 게 잘 안 되거든요. 생각하고 고민하는 쪽을 더 좋아해요. 그게 제 한계이면서 특징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라키난

책과 밥을 주면 글을 씁니다. 고료도 좋아합니다.

거울에서 기사필진으로 주로 인터뷰 담당, SF도서관에서 행사와 판매 담당.

현재는 평화로운 일개 취업자를 간절히 지망. 장래희망은 안락의자 탐정 타입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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