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의 불법 복사에 대한 두려움 



전자책을 자주 구입해서 읽어본 독자라면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길 것이다. 왜 구입한 책을 그 서점에서 제공하는 전자책 뷰어에서만 볼 수 있는지. 예를 들어서, 교보에서 구입한 전자책은 예스 24나 인터파크 뷰어에서는 읽을 수가 없다. 이것은 DRM(Digital Right Management)이라는 암호화 시스템 때문이다. 즉 교보에서 구입한 전자책에는 교보 뷰어에서만 읽을 수 있도록 암호화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다는 뜻이다. 많은 독자들이 이러한 불편 때문에 전자책 구입을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독자 입장에서는 특정 서점에서만 전자책을 구입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초창기 음반 시장에서도 이러한 DRM을 무리하게 적용해서 특정 MP3 플레이어에서만 음원을 들을 수 있도록 제한을 두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는 전통적인 음반 시장의 전체적인 축소였다. 오히려 애플이 아이튠스를 통해서 음원을 DRM 없이 적용한 결과, 음원 시장 판도가 애플에 넘어가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기존 음반 시장의 강자들— 프로듀싱 회사, 음반 배급사 등은 이 새로 재편된 시장에서 영향력이 상당히 줄었다.
3년여 동안 일부 출판사 사장님을 만나오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불법 복제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전자책은 파일이기 때문에 쉽게 복사해서 배포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서점/유통사를 통해서 DRM을 적용해 판매되는 시스템이 일반화되었다. 그런데 출판계에는 이마저도 믿지 못하겠다며 전자책을 일부러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어도비사의 DRM은 인터넷 검색만 해도 무력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미국에서 가장 점유율이 높은 아마존의 DRM의 경우도, 검색만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런 예시들만 본다면 전자책은 너무 쉽게 복사되기 때문에 출판사의 수익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불법 복제와 DRM 해제로 출판사의 수익이 감소했다는 말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가장 많이 불법 PDF가 제작된 도서는 ‘해리 포터’ 시리즈이다. 해리 포터는 2012년 저자 조앤 롤링이 세운 포터모어(https://www.pottermore.com/)에서 정식 전자책을 내기 전까지 수많은 불법 제작판(txt, 스캔해서 만든 PDF, Mobi, ePub)이 돌아다녔다. 하지만 해리포터를 낸 출판사와 저자가 큰 피해를 입었다는 뉴스는 찾기 어렵다. 실제로 불법 복사를 통해서 해당 도서의 판매 감소가 이루어졌다는 데이터는 아직 국내에서 아무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나는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불법 복사에 의한 수익 감소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이처럼 구체적인 사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자책의 불법 복사를 두려워하는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나는 종이책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본다. 많은 사람들이 종이책은 복사기로 일일이 복사하기 때문에(이마저도 종이라는 전달 매체가 필요하므로), 불법 복사를 통한 배포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한 번 보고, 그걸로 책장에 꽂힌 아무 책이나 집어서 촬영해보길 바란다. 놀랍도록 선명할 것이다. 요즘에 보급된 스마트폰의 카메라 화소수는 과거 몇 년 전에 발매된 디지털 카메라보다 월등할 정도이다. 실제로 만화의 경우 요 몇 년간 대여점에서 빌린 후 이런 식의 카메라 촬영으로 제작된 불법 도서들이 지금도 공유 사이트에 돌아다니고 있다. 텍스트 위주의 도서는 몇 명이 팀을 이루어서 일일이 타이핑을 해 txt 파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사실 과거에는 대학교 복사 가게에서 전공 서적의 불법 복사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기도 했다. 과연 지금과 같은 시대에 종이책이라고 해서 복제에서 안전할까? 디지털 파일이 완벽하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처럼 기기가 발달된 시대에는 종이책도 불법 복제가 쉽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길게 설명한 것뿐이다.
그렇다면, 출판사는 종이책조차도 제작하지 말아야 할까? 이런 물음에 나는 ‘그래서, 전자책을 오히려 더 많이 제작해야 한다’라는 역설을 내세우고자 한다.
요즘 도입된 기술로 디지털 포렌식이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해서 디지털화된 모든 파일에 고유의 지문 같은 성질을 분석해서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다. 전자책은 고유의 내부에 넘버링 값이 붙고, 그것은 DRM은 물론 판매를 위한 서버에 저장된다. 나중에 해당 파일의 DRM이 깨지거나 내부 인원에 의한 유출이 일어나더라도, 이런 증거를 바탕으로 원본에서 유출된 불법 자료들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은 반드시 송신자와 수신자간의 흔적이 로그 기록으로 남는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불법 복제와 유출자를 색출할 수 있고, 법적인 책임을 물릴 수 있다. 하지만 정식으로 만든 게 아닌 불법 복제된 파일들이라면, 대조할 파일이 없기 때문에 이런 식의 추적이 매우 어렵다. 기껏해야 공유 사이트에서 해당 도서를 검색해서 찾는 것뿐인데, 앞서 말한 포렌식 추적에 비해서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의 유명한 IT 출판사인 오렐리(http://www.oreilly.com/)의 경우는 아예 DRM 자체를 적용하지 않고, 자체 사이트를 통해서 전자책을 판매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회사의 도서 판매가 줄었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DRM 시스템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자체적으로 판매하고 독자의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을 마음껏 취하고 있다. 오히려 불법 복사가 마케팅 및 홍보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두려워했던 사항들이 사실은 막연하게 ‘그렇지 않을까?’라는 추측뿐, 증거는 반대편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즉 디지털화된 덕분에 불법 복사 추적이 더 쉬울 수 있고, DRM이라는 안전 장치가 없더라도 불법 복제에 의한 피해는 미비하다.
소설가 스티브 킹은 두려움과 공포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에 대한 감정이다.”





이광희

『Epub 전자책 제작 테크닉』 저자. 도서출판길벗의 전자책 기획및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전자책으로 언젠가 단편 영화, 인디 밴드 음반, 소규모 교육용 게임을 서비스할 거라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다.

on 우주 짝수호마다 “이광희의 전자책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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