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왕의 창녀 (정도경)
그것은 욕정과 수치심으로
얼룩진,
더러운
중독이었다.
사랑, 욕망, 집착, 미련,
고독, 상실……
죽었으나 생을 잊지 못하고 돌아오는 사람들,
또는 죽은 사람 뒤에 남겨진 사람들,
쌉싸름하고 끈적끈적한 남녀관계에 관한 이야기.
어둡고 폭력적이고 세상의 상식과는 맞지 않는 것 같은 이야기 가운데에서도 생명력과 자유의지를 향한 강렬한 의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정도경만의 아우라.
잘린 목에서는 피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고, 목이 잘린 후에도 장수의 머리는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 이 산의 동쪽으로 내려가면 좁은 골짜기에 동굴이 있습니다. 폐하와 왕자 전하께서는 부디 동굴에 피신하시고 호위병들을 골짜기에 매복시켜 적군이 오는 대로 베게 하소서.
— 짐의 경솔함으로 인해 명장을 잃었구나! 비록 머리만이라도 그대는 짐의 장수이니
앞으로도 계속 짐을 이끌어주지 않겠는가?
이에 장수의 잘린 머리는 처음으로 눈을 감고 미소를 띠었다. - 232쪽
지은이 _ 정도경
중편 「호狐)」로 제 3회 디지털 작가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공동단편집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에 「은아의 상자」를, 『아빠의 우주여행』에 「스위치, 오프」를, 『독재자』에 「오라데아의 마지막 군주」를,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에 「사랑, 그 어리석은」을 수록하였다. 「사랑, 그 어리석은」은 중편 「여행의 끝」과 함께 과학웹진 크로스로드에도 게재되었다. 그 외에 전자책 단편선 『방문』과 장편소설 『문이 열렸다』 『죽은 자의 꿈』을 출간했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탐색하려 노력하지만 쓰고 나서 보면 뭐든 전부 치정극으로 만들어버리는 재주가 있다. 읽고 나면 마음이 어두워지는 이야기를 주로 쓴다.
목차
왕의 창녀 007
- 왕은 누구든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온갖 포악한 짓을 다 한다. 왕의 자문을 하며 그에게 애증을 품은 나는 외국에서 공부할 때 만났던 친구에게 왕을 죽여달라고 의뢰한다.
어두운 입맞춤 035
- 평소 포악하기로 이름난 부잣집 아들이 죽고 살인현장에서 자백한 아내가 잡혀온다. 그러나 피해자의 아내는 서류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시신에는 여자의 힘으로는 낼 수 없는 흔적이 남아 있다.
휘파람 065
- 독재자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하다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무작정 비행정에 타고 떠난 남자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정글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구해준 부족은 말 대신 휘파람 소리로 의사소통을 한다.
방문 097
- 형에게 동생이 찾아온다.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한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자 내쫓지만, 동생은 자꾸 다시 찾아온다. 형은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흘 123 - 마약중독자인 어머니가 죽었다는 연락이 온다. 밤마다 관에서 어머니가 일어난다.
아이를 안고 있었다 149
- 호텔 바에서 남자가 꺼낸 이야기는, 6년 전에 아내가 어이없는 가벼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천천히 소름이 돋는 이야기.
Nessun sapra 175
-“이바쵸프, 다니일 바실례비치. 전쟁 때, 내가 그의 간호사였어요. 레닌그라드 포위전 때 그는 자살했어요. 그리고 내가 그 시체를 먹었어요.”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225
- 나라 멸망의 위기 앞에서 포기해버린 왕을 위해 장수가 자기 목을 자를 테니 목이 잘린 후에 신이한 일이 있거든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한다. 묘하게 마음에 큰 자국을 남기는 이야기.
달 아래 칼 255
-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영주의 학대받은 서녀와 칼의 장인이 사랑에 빠진다. 장인은 그녀가 쓸 칼을 밤낮으로 마음을 다해 만드나 전해줄 도리가 없다.
초혼 291
- 동성연애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위장결혼을 했던 남자가 사고로 죽는다. 남자의 아내가 어느 날 남자의 애인에게 연락을 해온다.
타인의 친절 325
- 아기를 잃고 무엇이라도 새로이 시작해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한다. 그러나 죽음의 무게는 여전히 짓누른다.
내 친구 좀비 357
- 유난히 엄마의 입김이 심하고 외출도 엄마 때문에 마음대로 못하는 친구였는데,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그 무엇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다른 사람을 따라 사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것도 바로 앞의 친구를 매번 따라하는 모습을 보여 보는 사람을 섬뜩하게 만든다.
내일의 어스름 391
- 부모 때문에 신흥사교집단에서 큰일을 당할 뻔했다. 실제로 ‘볼’ 줄 아는 할머니의 연락으로 사교집단에서 구출받아 할머니와 살게 된 여자는, 사교집단에서 나오기 직전부터 같은 꿈을 매년 꾸게 된다.
해설: 그 밤, 이야기들의 틈새가 텅 빈 무덤처럼 입을 벌리고 426
엮은이의 말 438
작가의 말 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