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나간다. 어떻게든 휴가를 잡고 싶다. 하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있거나 돈이 있거나 둘 다 있어야 했다. 휴학하고 등록금을 버는 중인 일용직 알바에겐 꿈 같은 소리다. 그렇다고 주위에 신세한탄이라도 했다가는 누군 다르냐며 도끼눈을 뜨고 쳐다볼 뿐. 정말로 휴가를 잡고 싶다면 스스로 길을 찾아내야 했다. 넉 달 전에 떠난 선미누나처럼. 


같은 편의점에서 일하던 선미누나는 스케일 크게 일상을 탈출한 케이스였다. 누나는 어릴 때부터 소원이 휴가를 잡는 것이었다. 쉴 때는 도서관을 돌며 휴가에 관련된 자료를 검색했다. 꼼꼼하게 조상님들이 남긴 기록을 살핀 누나는 국내에는 휴가의 씨가 마른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휴가가 목격된 것은 구한말로, 일제시대가 되자 일본인들이 대거 몰려와 최후의 휴가를 잡은 것 같다 하였다. 나야 휴가가 환상의 동물이라 불리는 이상, 역사적 사실과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출몰할 거라고 주장했지만 누나는 진지했다. 휴가는 실존하며 외국의 오성급 호텔에는 비밀 클럽이 있어서 휴가를 잡아놓고 구경하며 우아한 디너를 즐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위층 사람들이 여름이 되면 물이 맑다는 해외로 여행을 많이 가는 것이라고.

선미 누나는 작은 세계지도를 꺼내놓고 휴가가 있을 법한 곳에 빨간 동그라미를 쳤다. 뜨거운 날씨, 시원한 물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알려진 습성의 전부였기에 조건에 맞는 곳은 엄청나게 많았다. 누나는 휴가가 목격되었다는 기사가 뜨면 그 장소에 한 번 더 동그라미를 쳤다. 책에서 휴가 이야기가 나온 지역도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 손끝으로 두 겹, 혹은 세 겹으로 쳐진 동그라미를 따라 선을 그었다. 중국 남부에서 출발하여 베트남을 지나 중동, 남유럽, 북아프리카로 이어지다 훌쩍 남아메리카를 통과해 태평양을 건너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선을.

넉 달 전, 누나는 자유적금 통장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알바비는 줄지 않았지만 물가란 놈이 착실하게 오르는 바람에 한 달에 오만 원씩 넣던 것이 삼만 원을 지나 만 원도 넣기 힘든 지경이 된 것이다. 올해까지는 일을 할 예정이었지만 더 버티다간 휴가가 아니라 생활을 위해 적금을 깰 판이었다. 결국 누나는 예상보다 적은 돈을 들고, 예상보다 빨리 한국을 떴다.

“휴가를 보면 제일 먼저 너한테 연락할게.”

마음대로 진행된 것은 휴가를 잡으러 간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었지만 누나는 행복해 보였다.


지금쯤 어디에 가 있을까. 나는 휴가와 관련된 뉴스를 볼 때마다 누나를 떠올렸다. 점장님이 딸과 함께 휴가를 잡으러 가겠다며 48개월 할부로 누나의 휴가여행 전체 예산에 맞먹는 캠핑장비를 구입한 이야기를 할 때도, 누나 대신 일하게 된 점장님 딸 미정이가 워터휴가랜드에 가겠다고 휴대폰으로 수영복을 검색하며 대신 일을 봐달라고 할 때도, 엄마가 넌 나이도 어린 게 같이 휴가 잡으러 갈 친구도 없냐며 구박할 때도, 누나가 떠올랐다. 그리고 투덜거렸다. 휴가는 아무나 잡는 줄 아나. 시간이 있거나 돈이 있거나 둘 다 없으면 억지로 만들어낼 행동력이라도 있든가. 


그런데 갑자기, 새까맣게 탄 미정이가 핸드폰으로 워터휴가랜드에서 친구들과 가짜 휴가상에 올라타고 찍은 사진을 보여주다가 물었다. 

“오빤 휴가 잡으러 안 가?”

“나?”

“어.”

“내가 무슨 휴가를 잡냐.”

“뭐, 오빠 덕에 친구들이랑 놀러갔다 왔으니까 하루 정도는 대신 봐줄게.”

미정이의, 두껍게 아이라인을 그린 눈이 상냥해 보인 건 처음이었다. 


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휴가를 잡으러 어디로 가야 할까. 쉽게는 동네 약수터부터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계곡이 있는 산이 있다. 귀찮음을 감수하면 철도로 동해까지 가는 것도 가능하다. 대충 휴가를 잡으러 다녀왔다고 이름만 짓고 끝낼 사람들은 운동을 겸해 한강변에 슬렁슬렁 나가기도 했지만 그건 싫었다. 결국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인천으로 정했다. 아라뱃길을 따라 움직이면 내내 물을 보며 갈 수 있었다.


마침내 D-1일. 

나는 방구석에 놓인 5단 서랍장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쓰다 만 일기나 노트, 사진, 숙제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제일 아래칸을 열자 동전과 우표꾸러미 밑에 그것이 있었다. 한때 껴안고 잠들었다가 꿈속에서도 놓지 못했던, 어린이용 휴가잡기 디럭스 세트. 알록달록한 스티커가 붙은 노란색 플라스틱 가방 안에 손잡이가 늘어나는 잠자리채와 가장자리가 낡아서 풀어진 손그물이 들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사주신 것이었다. 잠자리 손잡이를 빼서 괜시리 천장을 한번 훑어보았다. 목이 흔들거리는 모양새가 영 부실했다. 손그물의 꺼실한 나일론 줄을 풀어 바닥에 펼쳐보니 겨우 애완견이나 들고양이 한 마리 들어갈까 말까 했다. 어릴 때는 그물만 있으면 휴가란 건 당연하게 잡히는 줄 알았더랬다. 나는 피식피식 웃으며 그물을 접었다. 다시 서랍에 넣을까 하다가 도로 꺼냈다. 휴가를 잡는 데 도움이 안 되어도 휴가 잡으러 가는 사람으로 보이는 데는 도움이 될 터였다. 에라, 기분이다.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 자전거 뒷좌석에 낡은 그물과 우산을 잡아 묶었다. 하늘이 꾸물꾸물한 게 비가 올 것 같았다.

“날도 안 좋은데 뭐 이런 날도 나가니.”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일어난 엄마가 투덜댔다.

“휴가 잡으러 다녀올 거거든요.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자전거에 뛰어올랐다. 남들 놀 때 일하기는 많이도 해봤지만 남들 일할 때 놀아보기는 처음이었다. 날도 흐리고 아라 뱃길 운하물이나 인천 앞바다 물이 깨끗할 리도 만무했지만 상관없었다. 휴가 잡으러 간다!


지하철로 인천으로 들어가 자전거를 내렸다. 평일인데도 역은 한산했다. 역 주변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게 하나 없이 허허벌판 같은 거리를 지나 신나게 운하 옆을 달렸다. 자전거 도로도 나뿐이었다. 폭주족이 된 기분으로  미친듯이 페달을 밟았다. 폐는 터질 것 같았고 거센 바람이 몸을 때렸다. 인천이라 바닷바람이 세긴 세구나 싶어 더 신이 나서 달렸다. 그런데, 맞바람이 점점 세지더니 앞으로 나가기 곤란할 정도가 되었다. 어라, 하는 사이 바람 방향이 바뀌었다. 어디선가 시뻘건 십자가가 박힌 종이조각이 얼굴로 날아와 당황한 사이 빗방울이 퍽, 하고 부딪쳤다. 거짓말이 아니라 오십원짜리 동전만 한 빗방울이 바람과 중력을 추진력삼아 진짜 퍽, 소리가 나게 돌진해왔다. 하늘에서 비비탄 총알처럼 빗방울을 난사했다. 자전거에서 내려 급히 우산을 꺼내 폈지만 이번엔 바람이 불어와 빈약한 살을 꺾어버렸다. 나는 비명을 참으며 물안개 위로 자전거를 끌고 근처에 보이는 철물점 처마 밑에 찌그러졌다.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발달한 태풍이 서해로 이동 중이라 했다.  

푹 젖어 덜덜 떨며 바다가 다 뭐냐, 화평 냉면이냐, 설렁탕이냐, 감자탕이냐 맞은편에 보이는 낡은 간판을 보며 뭐가 제일 맛있을까요 이상형 월드컵 현실도피하고 있을 때였다. 감자탕 집 문이 열리고 선미 누나가 나왔다. 


순간, 하도 비에 세게 두드려 맞아서 헛것을 봤나 했다. 메콩강에서 낚시질하거나 파묵칼레에서 발을 닦고 있다면 모를까, 인천 감자탕 집에서 보라색 플라스틱 슬리퍼를 끌고 나온 선미누나라니. 

“선미 누나?!” 

누나는 눈을 껌벅거리더니 감자탕집 문을 활짝 열었다. 

“얼른 들어와!” 

나는 누나의 도움으로 자전거를 묶어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누나는 마른 수건과 물수건을 꺼내왔다.  

“춥지? 밥은 먹었어?”

“어, 아니.”

대충 빗물을 닦아내고 따뜻한 물수건에 얼굴을 묻자 정신이 좀 돌아오는 것 같았다. 선미누나는 묻지도 않고 밥 공기와 감자탕 그릇을 가져왔다. 깍두기를 수북히 담고 식은 전을 두어 쪽 곁들였다. 그 행동이 익숙하기 짝이 없어서 더 이상했다.  

“잘 먹을게.”

“많이 먹어. 모자라면 더 갖다줄게.”

나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그릇에 숟가락을 푹 찔러 넣으며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위장이 아우성치자 나는 얼큰한 국물에 밥을 말아 아귀처럼 퍼 넣었다. 


결국 식사를 마치고 자판기 커피를 앞에 놓고서야 선미누나는 입을 열었다.  

“야.”

“어?”

“나 사기당한 거 같다.”

“어어?”

누나가 종이컵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꾹꾹 누르며 말했다.  

“예약했던 여행사가 안전하게 가자고 추가 입금 해달라고 하더니 싹 먹고 망했어.”

“…….”

“여긴 큰엄마가 하는 덴데, 일단 여기 있으면서 지켜보려고. 여행사가 인천에 있었거든.”

커피 한 입 머금어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삼십 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누나의 넉 달이, 세 문장으로 끝났다. 나는 종이컵을 입에 물고 우물거렸다.

“연락 안 해서 잘 있겠거니 했는데…….”

“넌 어때? 점장님이랑, 다들 잘 있어?” 

나는 점장님은 잘 계신다는 이야기와, 누나가 일하는 시간에 점장님 딸이 일한다는 것과, 부담스럽기 짝이 없지만 오늘 일을 바꿔준 걸 보면 생각보단 괜찮은 애 같다는 것과, 자전거를 타면서 봤던 아라뱃길 얘기까지 두서없이 길게, 아주 길게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동안 만났던 진상 손님 이야기를 꺼내 시덥잖게 웃다가 입을 다물었다.  

유리창 너머로 거세게 요동치는 바람소리가 파도소리 같았다. 쏴아아 쏴아아, 파도 소리 속에 앉아서 망할 휴가와 망할 태풍과 망할 여행사를 향한 욕설과 함께 지나치게 달고 지나치게 쓴 커피를 삼켰다. 마침내 그 커피마저 바닥을 보이자 누나가 말했다. 

“아무래도 휴가는, 없어서 환상의 동물이라고 하나봐.”

“뭐래. 그냥 돈이나 다시 벌어.”

“어쭈, 밥값 내고 가고 싶은가보지?”

“잘 먹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락 좀 하고 살고. 진짜 잘 먹었어. 갈게, 누나. 지금 바람 좀 멈춘 거 같다.”

누나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연락할게.”

마침내 누나가 말했다. 나는 뒤집힌 우산을 정리해 다시 자전거에 잘 묶었다. 그리고 낡은 그물을 누나에게 건넸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아빠가 사준 건데, 누나 줄게.”

“뭐야, 그건!”

“완전 소중하다는 뜻이지.”

선미 누나는 송사리도 잡기 힘들어 보이는 그물을 들고 눈물이 맺히도록 깔깔 웃었다. 






가는달

침묵을 찾아 떠난 한 악사의 고뇌와 절망, 깨달음을 그린 동양풍 판타지 「나하의 거울」로 제1회 이매진 단편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이매진에 작은 소녀의 이야기인 「작은 나닌」을 게재하기도 했다. 

거울 2호에 「윤회의 끝」을 발표하며 시간의 잔상 필진으로 합류했으며, 「나하의 거울」 「지구에 돌아오다」 「우주화」 「K씨의 개인사정으로 이번 호의 연재는 쉽니다」 「누구의 포크인가」등을 게재하며 활동 중이다.

길고 진지한 이야기 외에도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엽편에 강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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