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일간지에 필자가 운영하는 사설 도서관인 SF&판타지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장르 창작 모임과 함께 소개된 기사 내용은 전체적으로 도서관과 장르 문화에 대해 호의적이었고 필자의 사진도 잘 나왔기에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론 “덜 자란 어른들의 놀이? 어엿한 문단이랍니다.”라는 제목에서 장르 문화, 특히 SF와 판타지 문화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명확하게 보여서 아쉬움을 느꼈다. ‘덜 자란 어른들의 놀이’. 한국 사회에서 장르 문화에 대한 평은 대개 이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장르 문화는 덜 자란 어른들, 다시 말해 애들이나 즐길 만한 것이라는 말이 될까? 유치하고 가치 없고, 시간 낭비……. 제대로 된 어른들이라면 장르 문화를 즐기는 것이 이상하다는 뜻이 이 말에는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한국 사회에서 장르 문화는 매우 침체되어 있다. 영화 <아바타>에 엄청난 관객이 몰리고, <스타크래프트> 게임에 열광하지만, 그것은 장르 문화가 좋아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유행을 따르는 느낌에 가깝다. 진정으로 장르 문화를 좋아하여 즐기려는 이들은 ‘덜 자란 어른’이 아니면 오타쿠, 좋게 봐주어야 마니아 정도로 취급된다.(마니아가 오타쿠보다 좋은 표현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겠지만.) SF나 판타지를 황당무계한 이야기라며 업신여기는 현실 속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제외한 SF 영화는 외면받고 판타지 소설은 대여점에서나 빌려보는 시간 때우기용 황당무계한 얘기 정도로 여겨진다. 장르 작품이 유치하며 가치 없다고 여겨지며 장르 작품을 즐기는 사람들은 다들 묘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현실 속에서 장르 작품을 즐기는 사람들조차 자신이 장르 작품을 좋아한다는 것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고, 심지어

는 부끄러워한다.

흥미로운 것은 ‘장르 작품은 가치 없다.’라는 대중의 시선에 많은 장르 팬이 과민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SF는 미래의 가능성을 통해 인류를 이끌어주는 수준 높은 장르다.’ SF팬은 이렇게 말하며, ‘미스터리는 인간 내면의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며 세상을 보게 하는 고급 작품이다.’라고 미스터리 팬은 말한다. 판타지, 밀리터리, 무협……. 하나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가치를 찾는 가운데 ‘그냥 재미있으면 되는 거 아냐?’라는 목소리는 묻혀버리고, 장르 작품은 아무나 즐길 수 없는 어려운 뭔가로 치부되며 대중으로부터 더욱 멀어져간다.

얼마 전 도서관을 찾은 대학 강사 분께 한 이야기를 들었다. 강의 중 SF&판타지 도서관에 대해 이야기하자, 많은 학생이-장르 작품을 좋아하건 아니건 상관없이- ‘그 도서관은 아무나 못 가는 데 같다.’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큰 충격이었다. 누구든 편하게 장르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도서관을 열고 진행했지만, 정작 많은 이가 장르 작품만 모인 도서관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SF를 보려면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듣지만(물론 그때마다 ‘그럴 필요는 없다. SF는 과학 지식이 아니라 상상으로 만드는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답한다.) 설마 도서관을 방문하는 것조차 꺼리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동시에 장르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려 애쓴 행동이, 그리고 장르성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 도리어 장르의 즐거움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된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문득 필자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일찍부터 책읽기를 좋아하던 필자는 어린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곤 했는데, 특히 우주를 무대로 펼쳐지는 모험물을 즐겨보았다. 당시엔 그것이 SF인지 아닌지는 생각하지 않고 단지 재미있다는 생각이 보았다. 그 후 극장에서 <스타워즈>를 보며 그 멋진 영상과 재미에 폭 빠진 필자는 그 비슷한 작품을 찾아다녔고 결국 SF라는 장르자체를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필자는 판타지, 무협, 미스터리 등의 다른 장르 작품도 좋아한다.) 이 과정에서 장르 작품의 가치 같은 건 전혀 상관없었다. 단지 필자의 취향에 맞고 재미있는 작품을 찾아 즐기다보니 SF라는 장르 자체에 빠져버린 것이다. 

‘덜 자란 어른들의 놀이’. 사람들은 장르 작품을 이렇게 여긴다. 그것이 가치가 없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물론 시간 낭비라고도, 가치가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그것이 특별히 수준이 높거나 대단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놀이’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덜 자란’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조금 불만이지만, ‘다 자란 어른’이라는 것이 만일 놀이를 놀이로서 즐기지 못하는 이들을 뜻한다면 나는 도리어 ‘덜 자란 어른’으로 남고 싶다. 왜냐하면 내게 장르 작품은 죽을 때까지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장르 작품은 누구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놀이 이상의 그 어느 것도 아니다. 무언가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지만, 장르 작품을 보고 즐기는 첫 번째 목적은 바로 재미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장르 작품이 대가 없이 즐길 수 있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SF&판타지 도서관에 한 주부가 찾아왔다. 어린아이와 함께 찾아온 주부는 큰 아이가 수험생인데 판타지 작품에 빠져 있다면서, 신문에서 도서관의 소식을 본 김에 아이가 좋아하는 작품을 한 번 보고 이해하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했다.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내가 알아야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학부모의 말에 마침 도서관에 있었던 내가 안내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판타지를 많이 본다는 말에 『드래곤 라자』 같은 한국 판타지 소설 쪽을 이야기했지만, 이윽고 만화 쪽도 소개했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듣던 그분은 갑자기 반갑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책에 손을 내밀었다. “예전에 재미있게 보았다.”라며 집어든 책은 한국 작가인 신일숙씨의 만화 『1999년생』이었다. “아이가 보는 책은 전혀 몰랐는데, 판타지가 이렇게 가까운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라면서 “한번 보고 괜찮으면 내년에 아이에게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곳인 줄 몰랐다. 앞으로도 계속 와보고 내년엔 아이와 함께 와야겠다.”라고 말하는 그분의 표정은 마치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한 아이, 덜 자란 어른 같았다.

‘덜 자란 어른들의 놀이’. 이 같은 장르 작품에 대한 인식은 장르 작품이 가치 없는 시간 낭비라는 인식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장르 작품은 가치 있다.’라고 말하기보다 ‘장르 작품은 재미있고 인생을 즐기게 해준다.’라고 하는 게 어떨까? 비록 한국은 실용성이 없는 것을 무시하고 자기계발서만이 잘 팔리는 나라이지만, 그럼에도 즐거운 무언가를 찾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스스로는 부끄러워할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재미있는 건 재미있는 거. 한 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재미가 장르 작품에는 있으니 말이다.




전홍식

SF&판타지 도서관 관장. 디지털 문화 정책 석사 전공. 게임 기획자이자 강사로 활동 중.

독서가 취미로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읽는다. 항상 즐거운 삶을 나누고 싶은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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